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알을 깨는 데 조금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바깥세상이 보이고 있다. 이제 확실하게 날아오르는 일만 남았다. SK 선발진의 기대주로 손꼽히는 여건욱(28, SK)이 그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SK는 올 시즌 중반 이후 눈부신 스퍼트를 선보이며 막판까지 4강 싸움을 했다. 비록 아깝게 4강 진출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가능성을 봤다는 측면에서 아예 얻을 것이 없는 시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젊은 선수 중 하나가 바로 여건욱이었다. 시즌 막판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여건욱은 구단이 기대했던 그 모습을 보여주며 팀 막판 페이스에 힘을 보탰다. 올해보다는 내년을 좀 더 기대하게 하는 호투였다.
“시즌을 두 달만 더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라는 질문에 여건욱도 웃음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그만큼 시즌 막판 페이스가 좋았고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그런 페이스를 내년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가고시마 마무리훈련은 결코 쉽게 보낼 수 없는 일정이다. 여건욱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착실히 하며 내년 시즌에 대비한 몸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즌 막판 선발진에 합류하다보니 3승에 머물긴 했지만 그 3승이 가져다 준 효과는 꽤 컸다. 여건욱은 시즌을 돌아보며 “자신감을 많이 찾은 것 같다. 결국 오랜 기간 기대에 못 미쳤던 것도 돌이켜보면 자신감의 문제였던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마음이 달라지고, 심리적인 면이 달라지자 몸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여건욱은 140㎞대 중반의 빠르고 묵직한 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해 코칭스태프의 안타까움을 샀다. 하지만 올해 막판에는 자신감 있게 상대 타자들과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구위는 분명 쉽게 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입증했다.
이에 대해 여건욱은 “주위에서 편하게 던지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올해 목표였던 30이닝 소화도 이룬 만큼 부담도 덜었던 것 같다”라면서 “2볼에서도 자신감이 있게 던지다보니 원래라면 안 들어가는 좋은 코스에도 공이 들어가더라”고 미소 지었다. 유망주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여건욱이 밟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감, 그리고 타자를 상대하는 나름대로의 ‘감’을 찾은 만큼 이를 내년으로 이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 타자들도 이제는 여건욱에 대한 분석을 확실히 하고 나올 것인 만큼 그를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건욱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간신히 살린 불씨를 다시 꺼뜨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성실함에 있어서는 워낙 정평이 난 선수인 만큼 믿어볼 만하다는 구단 내부의 기대감도 읽힌다.
여건욱은 내년 목표에 대해 “성적에 대한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라면서 “다만 한 시즌 동안 2군에 가지 않고 계속 1군에 있는 것이 목표다. 그러다보면 어느 정도의 성적은 따라오지 않겠는가”라고 각오를 밝혔다. 보직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1군에서 활약하고 싶다는 의지다. 팀으로서는 여건욱이 반드시 자신의 목표를 이뤄야 내년 4강 경쟁을 할 수 있다. 알의 틈새를 만들어놓은 여건욱이 내년에는 완전히 알을 깨뜨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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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