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거다. SBS와 중국 저장위성TV가 공동제작한 중국판 ‘런닝맨’(중국명 달려라 형제)이 중국 전체 시청률 1위를 이어가고 있다. 금요일 밤에 방송되지만,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귀가 시계’로 불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성공 뒤에는 조효진 SBS PD가 있다. ‘런닝맨’을 포함해 ‘X맨’ ‘패밀리가 떴다’ 등 SBS 대표 예능프로그램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번 중국판 ‘런닝맨’ 제작에도 참여했다. 총연출로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작해, 총 15회 중 5회를 직접 촬영하고 편집하며 진두진휘했다. 4개월 동안의 ‘미션’을 끝내고 돌아온 조PD 얼굴은 피곤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사람이 없다 보니 한국판 ‘런닝맨’을 만들 때보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아직까지 ‘런닝맨’을 떠난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판 ‘런닝맨’은 어떻게 진행됐나.

“그동안 이야기는 많이 오갔다. 저장위성TV와의 프로젝트가 구체화된 것은 올해 5월이다. 지난 8월에 중국으로 넘어갔다. 저와 최소형PD, 작가 3명, 외주팀 3명으로 꾸려진 팀이었다. 편집할 때보니 평소 한국에서의 인력과 비교해 4분의 1밖에 안되더라. 한국판 ‘런닝맨’을 떠난 이유가 좀 쉬자는 이유였다. ‘X맨’때부터 줄곧 주말 예능을 했다. 11년 동안 제대로 못 쉰거다. ‘런닝맨’이 자리를 잡았으니 후배에게 넘겨주자는 마음이었는데, 그 타이밍에 중국 프로젝트 제안을 받았다.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런닝맨’을 4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손은 부족한데 부담은 크고, 일은 너무 많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웃음) 몇 년 만에 편집실에서 며칠 연속 밤을 보냈다.”
=‘런닝맨’은 공동제작을 진행했다.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나눈다. 좋은 선례라는 반응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합작을 선호한다. 한국의 ‘다른’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앞서 있다는 표현은 위험하다. 시스템이 다른 것뿐이다. 중국은 스튜디오예능 중심이었던 터라 버라이어티가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런닝맨’처럼 젊은 취향의 프로그램은 전무했다고 하더라. ‘런닝맨’을 유치하는 저장TV 측에서도 반신반의했다. 인터넷 반응은 좋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시청률이 과연 1% 넘을 수 있을까 했다더라. 다행히 시청률이 잘 나왔고, 인터넷 반응은 ‘역대급’이라고 하더라.”
=첫 회 시청률은 생각보다 아쉬웠다.
“다른 나라 방송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중국에 왔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중국어권에서 ‘런닝맨’이 인기가 있다 보니 기대가 워낙 컸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한국판 ‘런닝맨’ 팬들이 중국판에 반감을 보이더라. 또 중국판 멤버들이 모두 배우 출신이다. 야외리얼리티를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중국판 ‘런닝맨’ 제작 소식이 알려지고 캐스팅이 공개되자, 한국 멤버들이 4년 동안 쌓아온 저력을 순식간에 구현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래도 첫 회 녹화를 하면서 ‘망신은 당하지 않겠구나’란 생각이 들긴 했다.
=오히려 익숙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을 듯 하다.
“중국 제작진도, 출연진도 이런 야외버라이어티는 처음이니까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더라.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다 보니 스태프들끼리 분위기가 안 좋을 때도 있었다. 처음엔 불편한 정도겠지 생각했는데 어려움이 상당했다. 통역을 늘리고 늘렸다. 여러 가지 노력이 더해져 나중엔 친해졌다. 통역 대부분이 중국에 머무는 한국 유학생이었는데, 나중에는 조연출처럼 일했다. (웃음) 농담으로 ‘학도병’이라고 불렀다. 그들 노력에 프로그램이 잘 된 것 같다. 고맙다.”

=출연진과의 소통은 어땠나. 한국에선 연예인들과 사적인 친분이 있지만, 중국판은 아무래도 낯선 스타들과 함께 했다.
“우려를 안고 시작했다. ‘이런 버라이어티를 해보지 않은 멤버들이 잘 할 수 있을까’, ‘외국PD가 시키면 잘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다행히 기존 포맷이 있다 보니, 멤버들이 먼저 망가지는 걸 각오하고 왔다. 홍일점 안젤라 베이비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에서 슈퍼스타 급인 덩차오는 미팅 때 첫 마디가 ‘걱정 많이 했다면서요?’였다. 잘하지는 못해도 열심히 한다고 했고, 실제로도 굉장히 열심히 했다. 덩차오와는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했다. 본인이 경력이 오래된 배우이며 감독이지만, 이런 예능프로그램은 처음이라며 유재석을 존경한다고 했다. 쉴 때는 ‘이런 상황에서 유재석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당신 스타일대로 해라’고 답해주면서 ‘만약 유재석이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고 덧붙이곤 했다. 무엇보다 중국판 멤버들은 응집력이 매우 강하다. 한국판 멤버들에 비해 애드리브나 멘트는 아직 약할 수 있지만, 협동심은 상당하다.”
=중국판 멤버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캐스팅 회의에는 참석했지만, 중국 스타들을 잘 모르니까 큰 그림만 의논했다. 한국판과 마찬가지로 멤버가 7명이지만 캐릭터까지 맞추진 않았다. 게임버라이어티니까, 김종국처럼 체력이 좋은 캐릭터 등 힘의 균형을 맞춘 정도다. 멤버들에게도 한국판 캐릭터를 따라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5회 같은 경우는 중국판 멤버와 한국판 멤버들이 이름표 떼기 대결을 펼쳤다.
“편집이 ‘너~무’ 어려웠다. 한국 사람이다 보니 한국판 멤버들의 멘트가 익숙하고 재미있다. 또 같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캐릭터이니까 더 살려주고 싶더라. 중국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잘 알지만, 인간인지라 유혹에 시달렸다. 편집을 여러 번 수정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그렇다고 한국판 멤버들을 배제할 순 없지 않나. 절제하면서 적당히 살려줘야 했다. 고민이 많았는데, 반응이 좋아서 뿌듯했다.”
=1회는 한국판과 거의 흡사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생기더라.
“처음부터 한국판과 다르게 하겠다고 했다. 그대로 가져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연출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런닝맨’이 중국에서 나름 유명해 똑같이 하면 시청자들이 쉽게 알아버린다. 현지 제작진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면서 현지화 시킬 수 있도록 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기준이 다르다. 결국 중국 제작진과 많이 대화하는 게 답이었다.”
=자막 작업은 어떻게 했나.
“1회 자막은 중국 제작진이 했다. 처음에는 한글로 자막을 쓰고 이를 번역했는데, 느낌이 너무 달라서 시행착오를 거치다가 포기했다. ‘헐’이란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통역과 제작진이 모여서 1시간 동안 회의한 적도 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더라. 2회부터는 자막을 다는 스태프들에게 주요 장면들의 편집 의도와 방향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자막 스태프들이 한국판 ‘런닝맨’을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준 덕분에 자막이 점점 좋아졌다.”
=편집부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통역이 전체 촬영의 모든 멘트를 자막으로 달아준다. 그걸 읽으면서 통역에게 뉘앙스를 물어보면서 편집을 한다. 한국에서보다 최소 3~4배의 시간이 걸렸다. 나중엔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밤낮없이 편집실 붙박이였다. 스태프들이 같이 고생했다. 다행히 전체적인 웃음 포인트는 비슷했다. ‘런닝맨’은 게임을 기본 바탕으로 하니까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다. 행동이 귀여워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었는데, 현지 스태프들이 의외로 ‘빵’ 터지더라.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어보니 중국 사투리를 이상하게 썼다고 했다. 외국인이 뭘 알겠나. 한국에선 제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예민하거나 애매한 부분에선 현지 스태프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그들의 리액션을 많이 살폈다.”
=양국 제작 환경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느꼈나.
“중국은 한국보다 분업화가 정말 잘 돼 있다. 기획과 촬영과 편집, 이 세 가지가 명확하게 구분이 돼 있다. 시즌제도 부러웠다. 국내 ‘런닝맨’도 시즌제였으면 좀 더 여유롭게 창의적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지상파에선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말이다.”
=한국판 ‘런닝맨’은 후배에게 넘겨줬고, 중국판 ‘런닝맨’에서도 손을 뗐다. 향후 계획은?
“우선 휴식이 1번이다. 재충전을 해야 한다. 한국판 ‘런닝맨’을 4년 했고, 중국판 ‘런닝맨’을 4개월 했다. 한국판을 떠났을 때 느낌이 훨씬 강했지만, 중국판도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이라 나름 짠하더라. 사실 실감이 안 난다. 중국판은 새로운 버전의 ‘런닝맨’을 했다는 느낌이었다. ‘런닝맨’ 초창기엔 이런저런 말들도 많았지만 새로운 시도였다. 큰 규모의 특집이나, 말도 안 되는 초능력 특집 등을 해볼 수 있었다. 행복했다. 유재석과 멤버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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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