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잘하는 순서대로 힘을 가진다면 최정이 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참들이 바로 서야 팀도 바로설 수 있다”
김용희 SK 감독은 팀을 만드는 작업을 벽돌 쌓기에 비유한다. 김 감독은 “벽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라가는 과정에서 하나만 빠져도 굉장히 불안해진다. 그런데 그 벽돌이 여러 군데서 빠져 있다면 팀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벽돌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챙긴다.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리고 있는 마무리훈련 중에서도 틈만 나면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한다. 그런데 김 감독은 “내가 팀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김 감독은 “감독은 선수단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팀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어디까지나 선수단 내부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김 감독이 고참급 선수들의 몫을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참 선수들이 이끌어가고, 후배들이 그 뒤를 받치며 ‘끌고 미는’ 그림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고 있다. 고참급 선수들에 대해 확실히 예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의 현실을 보면 고참 선수들의 몫은 더 중요하다. SK는 클럽하우스의 리더 몫을 하던 이호준이 NC로 이적한 뒤 리더십의 공백을 절실히 느꼈다. 일부 선임급 선수들이 부단히 노력했지만 위기 상황에서 팀을 한 곳으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이 마땅치 않았다. 작년에 이 역할을 했던 박진만이 불의의 무릎 부상을 당해 꽤 오랜 기간 팀을 비우자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특히나 성적이 나지 않았던 고참 선수들은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야구 잘하는 선수 위주로 팀이 흘러가기도 했다. 김 감독은 “스스로 면이 서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그럼에도 고참 선수들은 해야 할 몫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마무리훈련 때도 고참 선수들과 따로 식사 자리를 가지며 이 임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고참 선수들이 그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김 감독의 흐뭇한 미소다.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실제 SK의 수비 훈련을 보면 가장 목소리가 큰 선수들은 30대 선수들이다. 보통 신인급 선수나 젊은 선수들이 큰 소리를 지르기 마련이지만 박정권 이대수 안치용 김상현 채병룡 등의 목소리가 이들의 성량을 능가하고 있다. 잘 한 플레이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칭찬이 이어지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더 큰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손짓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식시간이 거의 없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먼저 장비를 챙기는 모습에 후배들도 하나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후배들을 챙기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지루할 수 있는 마무리훈련이지만 세심하게 보듬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특히 임시주장인 최고참 안치용은 어린 선수들에게 직접 타격 훈련을 위한 공을 던져주는 등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 13일 열린 단거리 달리기 기록 측정 때는 후배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빠른 기록을 내며 모든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꼭 고참들이 아니더라도 어린 후배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격려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이번 캠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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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