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아파트 계단을 하나씩 천천히 걸어왔던 것 같다. 늦었지만 꾸준히 올라왔다고는 생각한다”
지난 세월을 담담하게 회고하는 최주환(26, 두산)은 자신의 프로 경력을 아파트 계단 오르기에 비유했다. 어떤 스타플레이어처럼 한 번이 3~4계단을 뛰어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계단씩 천천히 밟고 올라섰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최주환이 또 다른 계단을 마주하고 있다. 주전 자리다. 내년에는 이 계단을 반드시 밟겠다는 최주환의 각오가 겨울을 뜨겁게 달굴 기세다.
두산 내야에서 꾸준히 모습을 내민 최주환은 올해 시즌 막판 두산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였다. 10월 13경기 타율이 3할6푼4리에 이르렀다. 비록 두산이 시즌 막판 4강 경쟁에서 탈락하며 김이 새긴 했지만 최주환으로서는 의미가 있는 시기였다. 최주환은 남은 일정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아쉽고 그런 것은 없다. 다만 10월 초까지 타격감이 좋지 않았는데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미소 지었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타석에 들어선 것이 비결이다. 최주환은 “신나게 치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팀 성적이 떨어진 이후 차라리 편안하게 경기에 임했는데 타율이 2할4푼에서 2할8푼까지 올랐다”라면서 “그래도 올해 목표가 1군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는 이뤘던 것 같아 다행”이라고 돌아봤다. 마무리훈련에서는 떨어진 체력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항상 이맘때 체력이 떨어진 모습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이 패턴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최주환의 시즌 막판 활약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두산의 내년 내야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두산은 호르헤 칸투를 대체할 새 외국인 타자를 아직 확정짓지 못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에 이원석이 군 입대를 해 3루 자리가 비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태형 감독이 지목하는 선수 중 하나가 최주환이다. 최주환으로서는 주전 3루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올해 막판의 상승세를 이어나가는 것이 더 절실해졌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최주환도 내년 목표를 ‘주전 3루수 차지’로 정했다. 최주환은 “프로 지명 후 상무 2군, 대륙간컵, 파나마 야구 월드컵, 그리고 올해까지 어느 정도 단계를 밟았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내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간 해왔던 것처럼 또 한 계단을 밟는 시즌을 만들고 싶다”라고 눈을 반짝였다. 캠프에서는 2루 자원이 없어 주로 2루쪽 수비를 하고 있지만 3루 수비도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다. 최주환은 “내년이면 나도 어느덧 프로 10년차”라고 했다. 그간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탑을 쌓았다고 생각하는 최주환이다. 최주환은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쉽게 무너지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아직 늦은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늦게 피더라도 늦게 지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9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내실을 살찌웠던 최주환이 그 밑천을 발판 삼아 화려한 다음 10년을 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