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포츠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
지난 11월 10일부터 16일까지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렸던 2014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 ‘쉬빙겐(Schwingen)’ 선수 4명과 함께 한국을 찾았던 포겔 파울(57) 스위스 쉬빙겐협회 회장은 “씨름이 쉬빙겐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천하장사대축제에는 스위스의 쉬빙겐을 비롯해 스페인 루차카나리아, 몽골의 부흐 선수들과 233cm의 장신 커티스 존슨의 미국, 카자흐스탄, 중국, 몰도바, 뉴질랜드, 가나 등 9개 나라에서 4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그들의 씨름재간이야 아무래도 우리 선수들에게 못 미치지만 낯선 나라의 전통 민속경기를 보고 배우려는 자세만큼은 진지했다. 더군다나 그들 역시 제 나라에서 씨름과 엇비슷한 전통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이었으므로 소통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터였다.

스위스쉬빙겐협회는 지난 9월 씨름선수들이 알프스 산록 체르마트에서 열렸던 쉬빙겐 지역대회에서 시범을 보이도록 배려했다. 대한씨름협회(회장 박승한)도 그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쉬빙겐 선수들을 초청, 역시 시범 시간을 할애했다. 쉬빙겐은 전통적으로 우승자에게 황소를 주는 등 여러모로 우리 씨름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씨름과 본격적인 교류의 물꼬를 튼 포겔 파울 회장에게 쉬빙겐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인터뷰는 외국어대 독일어과를 나온 황새별 양의 통역으로 진행됐다) 포겔 파울 회장은 젊은 시절(16~20살) 쉬빙겐 선수를 했고, 무릎부상으로 일찍 그만두고 심판을 거쳐 쉬빙겐 협회에서 행정업무를 보다가 경력이 쌓여 올해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회장의 임기는 6년, 무보수 명예직이다. 그의 직업은 목수이고, 쉬빙겐협회는 비영리단체로 관계자들은 자원봉사로 참여한다.

-씨름은 야성적이고, 쉬빙겐은 목가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씨름을 실제로 접해보니 어떤가.
“우선 너무 비슷해 놀랐다. 쉬빙겐은 경기 후 승자가 패자의 등에 묻은 톱밥을 털어준다. 신사적이다. 씨름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다. 새로운 스포츠를 알게 돼 기쁘다. 이런 기회를 갖게 돼 좋다.”
-‘씨름’은 힘겨루기의 뜻이 내포돼 있다. ‘쉬빙겐’의 단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휙 돌린다’ 같은 뜻이 있다. 쉬빙겐은 균형감각을 중요시 한다. 누워서 하는 기술이 많고 넘어져도 반전이 가능하다. 등이 땅에 닿아야 진다.”
-씨름은 경기장에 모래를 깐다. 쉬빙겐은 톱밥을 이용한다. 왜 그런가.
“스위스에는 나무가 많다. 모래는 구하기 어렵고 톱밥은 쉽다. 게다가 톱밥은 부드럽다. 한 번 깐 다음 눌러서 다지고 물을 뿌린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경기장을 만든다. 톱밥은 부드러워서 선수들 부상을 방지하는데 아주 좋다. 직경 15m의 경기장 7개를 만드는데 이틀 걸린다.”
-씨름은 샅바를 그러쥐고 경기를 한다. 쉬빙겐도 덧옷을 잡는 것을 봤다. 게다가 우승자에게 황소를 주는 풍습도 있다고 들었다.
“그 덧옷은 ‘쉬빙겐 호젠(Schwingen hosen)’이라는 것이다. 선수들은 옷을 입고 신을 신고 경기를 한다. 우승자에게 1000~1200kg짜리 큰 황소를 주는 전통이 있다.
-씨름은 쉽게 말하자면 ‘넘어지면 진다.’ 맞붙기(토너먼트)로 승부를 가려 계단식으로 올라가 최종 승자를 가리는 식이다. 쉬빙겐은?
“쉬빙겐은 6명이 돌려붙기(리그전)를 한다. 점수제이다. 경기 내용에 따라 8~10점 사이, 이를테면 10점부터 9점, 8.75점, 8점 따위로 매기는 식이다. 비김도 점수를 준다. 공격 포인트가 있고 4번 연속지면 탈락한다. 점수를 합산해서 최종 승자를 가린다. 선수들은 경기 후 악수를 나누고, 상대에 대한 존중의 뜻으로 승자는 패자의 등을 털어준다.”
-천하장사에게 주는 우승 상금은 2억 원이다. 쉬빙겐은 어떤가.
“쉬빙겐은 상금이 없다. 대신 챔피언이 되면 스폰서가 생긴다. 연간 5만 유로(한화 약 8000만 원)가량 지원한다. 쉬빙겐 선수들은 직업이 따로 있다.”

-쉬빙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 쉬빙겐 100년사(1895~1995) 책도 있던데. 현황을 알려달라.
“300~400년 전 알프스 산악지대에서 시작했다. 협회는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서 1895년에 창립됐다. 170여개의 클럽으로 구성돼 있다. 스위스 인구가 800만 명가량인데, 쉬빙겐 동호인만 25만 명이고, 그 가운데 선수는 5만 명이다. 지역 협회가 5군데 있고 지역마다 경기를 연다. 3년마다 열리는 ‘쉬빙 페스트(fest)’ 축제 때는 관중 4, 5만 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스위스의 전통적인 ‘요들’이나 ‘알프호른’을 배경으로 경기를 치러 볼만하다.”
쉬빙겐은 축제처럼 치르고, 그 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은 돈보다 영예를 우선시한다. 목자와 농부들의 경기에서 발전해 현재는 스위스 전역에서 각계각층이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네 씨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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