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달력 전시, 내년 2월까지 남양주 실학박물관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14.11.23 17: 36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과 함께 ‘2014년 순회전’ 사 업의 일환으로 ‘달력, 시간의 자취’ 공동기획전을 11월 21일부터 2015년 2월 28일까지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이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2004년 개최한 ‘천문-하늘의 이치ㆍ땅의 이상’ 전시를 기반으로, 생활필수품인 ‘달력’이 인 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로 ‘경진년 대통력(보물 제1319호)’ 등 60여 점이 전시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달력, 경진력 대통력

전통사회에서 달력은 하늘의 시간을 백성들에게 알려주어 일상생활과 생산 활동 에 쓰일 수 있게 한 필수품이지만, 이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국가의 임무이자 정치적 권력의 표상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달력인 ‘경진년 대통력(보물 제1319호)’과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사용했던 대통력(보물 제160-10호)을 비롯하여 음력과 양력이 교체되던 대한제국기의 명시력(明時曆) 등 귀중한 달력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특히 류성룡이 사용한 책력 뒷면에는 의학 정 보가 기록되어 있고, 안정복(安鼎福, 1721~1791)이 사용한 시헌서에는 오늘날의 다 이어리처럼 날짜별로 일상사의 간략한 내용과 메모가 기록되어 있어서, 이들의 친 필도 볼 수 있다.
▲책력의 시대
조선시대에는 달력이 책의 형태로 제작되어 책력(冊曆) 또는 역서(曆書)라고 했다. 천문학을 연구하는 기관인 관상감에서 새 책력을 만들어 궁중에 헌납하면 백 관에게 나누어 주고 각 관아의 서리도 동지의 선물로 책력을 친지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지책력’이다.
책력은 단순히 월ㆍ일의 시간적 흐름뿐 만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농사나 길흉화복 등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서 생활지침 서로서 활용 됐다. 그래서 조선 전기에 1만부 정도 발행되던 책력은 조선후기에 30만부 이상 발행됐다. 책력 이외도 새 달력을 받으면 가족의 생일이나 조상의 기일을 표시하는 것처럼, 별도로 일 년치 달력을 만들어 가족의 생일이나 기일을 표시한 ‘기일비망기’나 ‘기일판’도 이번에 선보인다.
▲양력의 시대
1888년부터는 외국과의 조약 체결이 빈번해지면서 외교문서에 개국(開國) 기원과 더불어 태양력을 기반으로 하는 양력을 사용했다. 그리고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한 양력을 공포하면서 음력 날짜 하단에 양력 날짜를 기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양력의 강제 시행으로, 달의 주기에 근거한 음력에 익숙한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했고, 월화수목금토일 7일=1주일이라는 시간 개념에도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양력보다 음력을 선호했기 때문에 해방 이후까 지도 양력설과 음력설을 이중으로 쇠는 등 양력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있었다. 여 기에 양력을 표기한 대한제국기의 ‘시헌력’과 ‘명시력’, 그리고 양력 위주의 달력인 일제강점기의 ‘조선민력’과 기독교 선교사가 제작한 달력 등 다양한 시대별 달력을 볼 수 있다.
▲달력의 대중화
달력이 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이다.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공공기관이나 기업체에서 홍보용으로 달력을 무료로 배포하였기 때문에 굳이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홍보용으로 제작되던 달력이 줄어들면서 한 집 한 개의 달력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달력은 시대에 따라 진화되어 오늘날 입체 달력이나 디지털 달력이 등장하는 등 시대의 변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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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황도북총성도(위)와 1580년 경진년 대통력.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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