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스크린을 집어삼킨 배우 이정재, 그가 이번에는 코믹한 액션 배우로 변신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의외의 선택이었고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가 연기한 영화 '빅매치'의 최익호는 '관상' 속 수양대군, '신세계'의 이자성과는 시대적으로나 캐릭터적으로 판이한 인물. 하지만 이정재는 다년간 쌓아온 탄탄한 연기력으로 단시간에 몰입, 캐릭터를 완벽히 녹였다.
이정재의 선택은 일종의 완급조절이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997년 ‘박대박’, 2003년 ‘오브라더스’에 이어 2008년 ‘기방난동사건’에서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던 게 그 방증. 약 5년을 주기로 조금은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해 관객들은 물론,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시도가 아닐까? ‘다작’을 하는 그에게 있어서 이같은 장르 호흡 주기는 중요한 포인트임에 분명하다.
이번 작품 ‘빅매치’도 이러한 맥락에서 선택한 작품. 하지만 이정재는 쉬어가지 않았다. 몸을 아끼지 않는 육탄액션과 창피함을 무릅쓴 코믹연기로 웃음폭탄을 선사한 것. 최근 ‘빅매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정재는 “소처럼 일하려고 했는데 개처럼 일했다”며 ‘빅매치’ 촬영 후기를 전했다.

- 코믹한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영화 '빅매치' 선백한 이유는?
“그동안 심각한 작품들만 했기 때문에 쉬었다 가는 의미로 선택하게 됐다. 영화 ‘관상’부터 ‘신세계’까지 극중 무게 잡는 역할만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영화를 통해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평소 ‘절친’으로 알려진 배우 정우성의 '신의 한수'를 의식한 선택은 아니었는지?
“약간 염두는 뒀다. 요즘 영화들이 남성적인 코드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겹쳐 보일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신의 한 수’를 택한 정우성은 복수코드에 관심이 있었고, 나는 좀 더 유머가 가미된 액션영화를 골랐다. 정우성과 만나 어떤 작품을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이야기 하진 않는다.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출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참견이 될 수밖에 없다. 각자의 방식 각자의 취향이 있는 거다.”
- 올해 초 “소처럼 일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는데, 돌아보면 어땠나?
“소처럼 일하려다가 개처럼 일했다. 갈수록 퀄리티가 좋은 한국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작품 수를 늘려서라도 많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다작’을 하게 됐다. 이런 시기에 주춤하게 되면 열심히 안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
- ‘빅매치’ 촬영 전 어깨 인대 파열이 있었다. 액션영화인데 무리한 거 아닌지?
“주변에서 만류를 많이 했지만 강행했다. 촬영할 때는 모르다가 밤에 잘 때, 아침에 일어날 때 특히 아팠는데 그래도 카메라가 돌면 몸이 움직여지더라. 무술팀이 도움을 줬다. 다친 오른팔은 뻗는 건 괜찮은데 당기는 것은 어려웠는데, 무술팀이 오른팔은 뻗는 것 위주로 왼팔은 당기는 것 위주로 합을 고쳐줬다.
- 신하균과 직접 대면하는 장면은 마지막 몇 분이다. 상대역 없이 연기하는 것 힘들지는 않았나?
“사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헷갈리기는 했지만 영화 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설계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신하균이 훨씬 힘들었을 것 같다. 나는 액션 장면이 대부분인데 비해 그는 밀폐된 공간에서 모든 것을 소화해야 했다. 힘들었을 것이다.
- 상대역으로 가수 보아가 등장한다. 가수 출신 배우라는 선입견은 없었나.
“선입견은 처음부터 없었다. 잘 할 것이라는 생각도 바로 들었. 최호 감독이 여 주인공으로 보아가 어떻겠냐고 슬쩍 물어봤는데 2~3초간 생각했다. 캐릭터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보아도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노력한 가수로 알고 있다. 이번에 연기한 캐릭터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또 보아는 현장에 올 때 정말 연습을 많이 해온다. 확실히 프로다.

-보아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 이정재 소속사 씨제스엔터테인먼트와 사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나
“1.5 초가량 한 거 같다. 내가 사랑의 징검다리가 되지 않나 싶다.”
-작품을 고를 때의 기준이 궁금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지, 관객이 자신에게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둘 다 고려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거 같다. '빅매치'도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 과거 혼자 주연을 맡았던 이정재, 요즘 팀플레이를 더 잘하는 것 같은데.
“예전에는 멀티캐스팅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때는 연기하는데 자유롭지 못했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생각이나 감정은 있는데 그게 연기와 제대로 안 맞았던 거 같다. 요즘 작품에 들어가면 상대방 호흡을 살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영화의 완성도가 더 좋아지는 거 같다. 팀플레이를 하면서 내 욕심을 낮추고 서포팅을 하고, 또 서포팅을 받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요즘 영화 흥행 결과가 좀 더 좋지 않나 싶다.
-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다. 결혼 생각은 없나
“결혼기는 이제 지나간 것 같다. 예전에는 2~3년 안에 하겠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독신주의는 아니다.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다른 배우들처럼 구상만 있을 뿐이다. 오래 하다보면 머릿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 한 두 편은 누구나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각만 할뿐 제작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도 배우로서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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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