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SF 영화 ‘인터스텔라’의 스노우볼 흥행세가 연일 놀랍다. 개봉 25일 만인 이달 1일까지 무려 841만 관객을 빨아들인 것도 대단하지만, 극장가 비수기인 11월을 맞아 이 정도의 매머드 급 관객을 유치했다는 사실 역시 경이로울 뿐이다. 영화만 훌륭하다면 이젠 성수기, 비수기 가릴 것 없다는 극장가 흥행 법칙이 새삼 입증된 셈이다.
2일 아이맥스 상영이 종료되지만 여전히 예매율이 높아 1000만 돌파는 시간문제이고 역대 외화 1위 ‘아바타’(1362만)를 넘어설지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지난 주말 열기를 확인하기 위해 극장을 찾았는데 역시나 80% 이상 좌석이 차있었다. 흥미로운 현상은 10~20대 뿐 아니라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식을 줄 모르는 ‘인터스텔라’ 신드롬은 한국 영화인들에게도 많은 자극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제 웬만큼 영화를 잘 만들지 않으면 눈높이가 상향 조정된 관객들에게 외면 받을 확률이 더 농후해진 것이다. ‘인터스텔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가 졸지에 꼬리칸 영화가 돼야 했던 ‘나의 독재자’ ‘패션왕’ ‘카트’도 나름 의미와 미덕을 갖췄지만 관객의 폭넓은 공감을 얻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인터스텔라’에 흠뻑 취한 관객들의 소감을 종합해보면 요즘 말로 ‘고급지다’로 귀결된다. 단순히 ‘재미있다, 눈물 난다’가 아니라 할리우드가 가끔씩 내놓는 고품격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는 평이다. 2009년 ‘아바타’가 3D 열풍을 주도하며 시각적 혁명을 꾀했다면 이번 ‘인터스텔라’는 뜨거운 부성애와 인류애를 밑그림으로 해 웜홀과 상대성 이론, 여기에 인간의 원초적 고독 등 물리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서정성을 두루 만족시키며 단번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영화가 흥행하려면 반드시 매력적인 스토리와 신선한 비주얼을 갖춰야 하는데 놀란 감독은 매우 영리한 방식으로 이 두 가지를 취하며 관객을 들었다 놓고 있다. 과거 소련과 냉전 종식 후 할리우드는 일찌감치 우주로 눈을 돌렸고 그간 숱한 공상 과학 영화를 쏟아냈다. 워너 브러더스가 만든 ‘인터스텔라’ 역시 멸망을 앞둔 지구인을 구하기 위해 우주를 정복하는 건 미국이라는 다소 해묵은 팍스 아메리카 정서가 여지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미국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도 많은 지구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서사에 보편적 정서를 잘 탑재시켰기 때문이다. 부모는 죽어서도 유령이 돼 자녀를 지킨다는 눈물겨운 부성애를 과연 누가 쉽게 외면할 수 있을까. 또 낯선 행성에 고립된 브랜드를 구하기 위해 로봇 타스와 토성을 벗어나는 쿠퍼의 비장한 얼굴을 보며 먹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비해 ‘나의 독재자’의 경우 만듦새와 배우들의 열연이 뛰어났음에도 영리하지 못 한 결말 때문에 흥행의 고배를 마셨다는 생각이다. 평생 김일성 대역 배우로 살았던 설경구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통령과 마지막으로 벌이는 남북 정상회담 리허설에선 최소한 승리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끝까지 시대를 잘 못 만나 한 평생 루저로 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한과 설움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그 장면은 어쩐지 예술영화의 작법과 엔딩으로 다가왔다. 상업영화의 미덕이 뭔가. 일단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고, 웃음과 감동적인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주며 궁극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홍상수 김기덕 정도가 아니라면 ‘이건 내 영화’라고 힘줘 말할 수 있는 감독이 아직은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카트’ 역시 여전히 비정규직과 해고노동자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서 염정아가 복직돼 활짝 웃는 모습으로 영화를 끝맺지 못 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건 사기에 가까운 결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은 불의에 맞서 물대포를 맞으며 소중한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조원들의 힘겨운 모습에서 카메라를 멈췄다. 아무리 열린 결말이라도 비정규직의 고단한 일상과 처절함을 지켜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관대한 관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적어도 해피엔딩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승리감을 느끼게 해준 뒤, 그래도 우리에겐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면 좀 더 폭넓은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고급스러운 오락 영화라는 칭송을 들으며 엄청난 돈을 싹쓸이해가는 크리스토퍼 놀란 형제의 내공이 그저 감탄스럽고 부럽다. 우리도 걸핏하면 대기업과 각만 세우지 말고 좀 더 영리하게 대중을 사로잡는 유연한 감독과 제작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투자사도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을 존중해주면서 함께 하겠다는 파트너십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안 그랬다간 제2, 제3의 놀란에게 꼼짝 못하고 관객을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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