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박대리 최귀화 "무슨 회사원이에요, 그 얼굴에?" [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12.02 15: 13

tvN 금토드라마 '미생'의 박대리 역 최귀화는 직장생활 경험이 없다. 1997년에 연극으로 데뷔 한 후, 연기자 한 길 인생을 걸어 온 그는 회사 생활을 전혀 해 보지 않았다. 장례식장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입지 않는, 실제 갖고 있는 검정색 슈트를 입고 나왔다. 그런 그에게 박대리와 어떤 부분이 맞닿아있냐는 질문을 던지자 "삶이 직장이다. 내겐 감독님이 사장님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장생활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제 삶 자체가 박대리랑 비슷한 면이 있죠. 현재 처해있는 삶의 모습과 가정 얘기,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정말 내게 맞는가라는 갈등. 저도 그랬거든요. 결혼 전에는 그런 고민을 안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담감을 느꼈죠. 나는 행복한데, 이게 과연 집사람과 아이에게도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최귀화는 '미생' 6화에서 '사람이 너무 좋다'라는 이유로 정글같은 회사 생활에서 약자에 놓이는, 그래서 항상 자신감 없이 위축돼 있는 IT 영업팀 박대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미생'에서 천사 날개 CG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화제가 된 이 천사 날개 장면은 실제로 옷을 벗고 오직 살색 팬티 한 장만을 착용한 상태에서 찍었다. 한 마디로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단다. "시커먼 사람이 팬티만 입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하니 보시는 분들(스태프들)도 민망하셨을거예요." 비하인드 컷. 영화 '곡성' 촬영 탓에 당시 온 몸에 멍이 들어 분장팀의 각고의 노력이 들어갔단다.
'미생'은 그의 연기 인생에 큰 변화 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처음에 캐스팅 디렉터에게 연락이 와서 미팅을 했다. 김원석 감독은 흥미롭게도, 최귀화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일대일'에서 망치로 맞는 장면을 보고 그를 만났다고. 하지만 최귀화가 할 만한 역이 마땅치 않았다.
"감독님께서 만화책('미생')을 보여주시더라고요. 박대리를 보고 '내가 할 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본을 주셔서 슥 읽어보는데, 볼수록 몰입이 됐어요. 제가 연기하는 슬픈 부분들이 감독님 마음에 드신 거 같아요. 하지만 미팅하고 나서 엄청 오래 기다렸어요. 한 달 정도가 돼서는 '아 떨어졌구나' 싶었죠. 그저 영화 '곡성'이나 열심히 하자, 이러고 포기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곡성'에서 장발로 출연하는 그는 회사원이 되기 위해 머리를 잘라야 했다. 그렇기에 '곡성'의 연출자인 나홍진 감독에게 머리를 잘라도 되냐는 허락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나홍진 감독의 돌아오는 대답이 "무슨 회사원이예요. 그 얼굴에. 하하하"였다고. 그리고 나서 흔쾌히 오케이 했단다. 참고로, '곡성'에서는 굉장히 와일드한 성격의 소유자로 말 수도 없고 무서운 성격이며 누군가를 쫓는 캐릭터다. 한 마디로 '미생'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에너지 자체가 많아요. 눈빛연기가 가장 어려웠고, 온 몸을 릴렉스하고 걸음걸이나 고개 방향, 각도 같은 것들 역시 철저하게 계산했어요. 제가 여태까지 맡은 역 중 가장 어려웠죠. 항상 누구를 죽이러 다니고 제가 욕을 했는데, 막상 욕을 들으려니까 쉽지 않더라고요. 하하. ('미생' 촬영 당시)하루 종일 과장님이 뭐라고 그러시는데 나중에는 욱 하더라고요. 그랬더니 과장님(배우가)도 '나도 어쩔 수 없어'라고 하셨어요."(웃음)
박대리를 연기하면서 아이를 학원 보내야 하는데 일주일에 세 번 15만원, 한 달이면 60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 속, 아내에게 '애가 하고 싶어서 시키는 거냐, 아니면 당신이 좋아서 시키는 거냐'고 묻는 장면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장 와닿았다는 그다.
직장을 극단과 비교한다면 실제로는 강대리(오민석)와 가장 비슷한 모습일거라는 그가 'IT 영업팀의 박대리'였던 것을 다시금 상기하며, '실제 IT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까?'란 호기심이 문득 들어 물었다. 그랬더니 "휴대폰 케이스를 만드는 공장에서 철야로 외국인들과 함께 일했었다. 그것밖에 IT와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라고 짐짓 진지하게 말했다.
화제를 돌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질문에는 "임시완 씨는 진짜 장그래 같더라. 같이 얘기를 해보면 정말 그 캐릭터 감정을 유지하려고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장그래 그 자체다"라고 평했다.
이어 "오히려 장백기 역 강하늘 씨는 애교가 되게 많아 캐릭터와 좀 다르다"고 덧붙였다. 극 중 장백기는 박대리를 답답해 하는 후배로, 끝까지 박대리의 곁에서 그를 지지해 준 장그래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 인상을 남겼던 바다.
드라마를 보면서 '정말 연기 잘 하는 구나' 라고 생각하는 배우가 있냐는 질문에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잘 한다. 나이가 다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김대리 역 김대명은 정말 놀랍고, 한석율 역 변요한도 꽤 잘 한다. 붕 떠 있는 역할이라 쉽지 않을텐데 참 잘하더라"고 칭찬했다.
오차장 역 배우 이성민과의 인연도 들려줬다. "이성민 씨가 날 처음 보고 '맞지?'라고 하셔서 '아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 때 내가 이성민 선배님 외 출연 배우들에게 사투리를 가르쳤었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 이성민 선배님께서 많이 격려해주시더라"고 말했다. 최귀화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미생'은 배우 최귀화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미생' 이전과 이후가 정말 달라요. 제 연기 인생의 반전이에요. 김원석 감독님과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나를 박대리 역에 캐스팅하시는 걸 보고 '감독님께서 착각하시는 거다'라고 생각 했죠. '나를 보고 어떻게 박대리를 생각하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에이 안될거야'와 동시에 '하면 정말 대박이겠다'란 생각이 공존했습니다. 뜬다는 생각은 못 했고 이걸 잘하면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주로 연극과 영화에서 활동해 온 그가 드라마에 대한 매력을 느꼈단다. 그는 "물론 '미생'은 대본이 미리 나와 있었고, 이미 두 달 전에 파악을 한 작품이니까 여타 드라마와는 다르겠지만, 안 끊고 쭉 가니깐 너무 좋더라. 영화는 한 신 찍고 점심 먹고 오고 이런 게 오히려 감정 연기로는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긴 호흡으로 스피디하게 가는 드라마를 하니 매력적이였다. 쪽대본만 아니면 정말 매력 있겠구나 생각했다"라며 '미생'으로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느꼈음을 털어놨다.
'미생'은 또,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이름보다는 '박대리'로 불리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단다.
"집사람이랑 집 앞 가게에 닭발을 먹으러 갔어요. 사람이 엄청 많은 데서 먹고 있는데, 조짐이 오더라고요. '난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슥 한 분이 오시면서 '맞죠?'라고 물으시더라고요. '예'라고 했더니 '거 봐'라고 같이 온 일행들한테 말하시더라고요. 다 못 먹고 나왔어요. 집사람이랑 애기가 같이 있으니까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도 너무 너무 감사한 일이죠. 전 아직 (그런 시선을)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부담스럽기 보다는 두렵습니다. 최근에 '미생' 덕에 광고 미팅을 갔는데 거기에서 사인을 해 달라고 하셔서 당황했어요. 사인이 아직 없다고 했죠."
솔직히 박대리는 직장 생활에서 썩 달가운 존재가 아니다. 이런 박대리를 연기한 배우로서 그를 위한 변을 해 달라고 했다.
"주위에 항상 그런 사람이 있어요. 무리 중에도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까 윗 분이 요구하는 걸 빨리 캐치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죠. 무리 속에 있으니 답답한 거예요. 그래도 같은 무리니까 잘 이해시켜서 설득해서 가는 수 밖에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배척하기 보다는 같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도 실수를 하거든요. 결국 잘난체 하는 사람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박대리 같은 사람이예요. 잘난 체 하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혼나면 보듬어주죠. 즉 박대리 같은 사람은 무리에서 조직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는 현재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는 사업 중 시나리오 개발작에 선정돼 직접 대본를 쓰고 있는 중이다. 다재다능한 그의 행보를 지켜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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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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