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결말이지만, 답답함을 참을 수 없다. 위험천만한 무모함이 다소 수그러진 듯 했으나, 섣부른 행동으로 또 한 번 위기에 처했다.
지난 2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극본 윤선주, 연출 김형식) 22회에서는 이선(이제훈)이 몰래 운영하고 있는 서재의 존재가 노론 세력에 발각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홍계희(장현성)는 영조(한석규)에게 이를 두고 "이선이 키운 역도"라고 고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이선과 홍계희는 갈등을 반복했다. 세손책봉으로 아들의 입지를 지키려는 이선과 이에 반대하는 홍계희. 이선 대신 영조가 나서 홍계희를 압박했다. 영조는 홍계희가 국가예산을 정치자금으로 빼돌린 사실에 대해 책임을 물었고, 홍계희는 조선을 위한 일이었을 뿐 자신의 주머니엔 넣지 않았다고 대꾸했다. 영조의 태도가 완강하자 홍계희는 이선의 내탕금(임금의 개인 재산)을 문제 삼았다.

결과적으로 이선의 승리였다. 이선은 홍계희의 의중을 눈치 채고 손을 썼다. 홍계희와 노론 무리는 이선의 내탕금이 불온한 세력에 전해지는 현장을 덮치려 했지만, 그 자리엔 평양감사가 있었다. 평양감사는 이선이 기근에 시달리는 평양 백성들을 남몰래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헛다리를 짚은 꼴이 된 홍계희와 노론 세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자책봉에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2년 후였다. 혜경궁 홍씨(박은빈)은 이선의 처소에서 우연히 서재와 관련된 문서를 발견했고, 평민과 역적의 자식 등을 교육 시키는 서재의 정체를 파악했다. 혜경궁 홍씨는 아버지 홍봉한(김명국)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실이 홍계희의 귀까지 전해졌다. 민백상(엄효섭) 나철주(김민종) 등 서재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자, 이선은 이를 직접 해결하고자 서재로 달려갔다.
이날 이선은 달라진 듯 보였다. 아내와 자식은 안중에 없고 현실과의 타협은커녕 언제나 이상만을 고집하던 그였다. 요령도 없어 번번이 당하던 그였지만, 이날만큼은 홍계희의 움직임을 먼저 파악하고 덫을 놓기도 했다. 영조는 정치를 조금은 일깨운 이선을 뿌듯하게 여겼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할 나위 없이 돈독해 보였다. 그는 혜경궁 홍씨의 말도 순순히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모든 것은 서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앞서 평민들의 과거 응시를 주도했으나 스스로 뜻을 꺾어야 했던 이선이었다. 이는 지나치게 과격한 시도였고, "조선의 근간인 사농공상을 뒤흔든다"고 해 영조와 노론 세력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선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몰래 서재를 운영하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영리하지 못한 선택을 함으로써 실패를 자초한 것이다.
'비밀의 문' 속 이선은 분명 좋은 지도자다. 동시에 이선은 평가가 엇갈리는 역사 속 실제 인물 사도세자다. 이 결합이 매끄럽지 못하다 보니 어정쩡해졌다. 역사를 따라가자니 실제 사도세자와 간극이 너무 넓고, 드라마만을 따라가자니 이렇다 할 명분 없이 이상만을 따르는 어린 아이 같은 이선에게 몰입이 쉽지 않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한 듯 했으나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그의 죽음이 너무 허망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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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