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하루가 찾아왔다. 기차가 많이 떠나 모든 선수들이 막차를 타지는 못한다.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누군가는 쓴웃음을 지어야 한다.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 남은 5명의 선수들의 명운은 3일 결정된다.
올해 FA 시장은 총 19명의 선수가 쏟아져 나오며 풍년을 이뤘다. 양은 물론 질도 풍년이었다. 최정(SK)이 FA 역대 최고액인 4년 86억 원에 계약한 것에 이어 윤성환(삼성, 4년 80억 원) 안지만(삼성, 4년 65억 원) 김강민(SK, 4년 56억 원) 박용택(LG, 4년 50억 원) 등 총 8명이 자신의 값어치를 인정받으며 원소속구단과 도장을 찍었다. 이어 두산과 4년 84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은 장원준을 비롯, 권혁(한화) 김사율 박경수 박기혁(이상 kt)이 새둥지를 찾았다. 2일에는 송은범이 한화와 4년 34억 원에 도장을 찍으며 새 유니폼을 결정했다.
14명의 선수는 따뜻한 겨울과 함께 힘찬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5명의 선수는 아직도 새 소속팀을 결정하지 못했다. 투수 배영수 이재영, 포수 차일목, 내야수 나주환, 외야수 이성열이 애가 타는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원소속구단의 제시액에 만족하지 못해 자신의 가치를 시장에서 평가받으려고 나온 선수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장의 관심은 활활 타오르지 않고 있다.

FA 시장의 대어들은 선수들이 ‘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단어가 ‘을’로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궁지에 몰린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야 하는데, 수요가 확 줄었기 때문이다. 삼성, 넥센은 애당초 외부 FA 영입은 없을 것이라 못 박았고 롯데, KIA, NC도 소극적이다. 최정 김강민 조동화를 잡은 SK는 외부 FA 시장에서 일찌감치 발을 뺐다. LG와 두산도 철수하는 분위기다. kt는 더 영입하고 싶어도 못한다. 김성근 감독 영입 이후 전력 보강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한화 정도만 남았다는 시선이었는데 송은범이 한화행 기차에 탑승하며 자리는 더 비좁아졌다.
그러나 권혁과 송은범을 영입한 한화도 가진 금전의 한계가 있는 만큼 3명을 모두 채울지는 미지수다. 김성근 신임 감독이 구단 쪽에 FA 영입을 요구했고 권혁 송은범을 잡으며 구단으로서 체면은 세웠다. 보상 선수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한 관계자는 “한화의 팜이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많이 성장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는 눈에 띄는 자원들이 늘어났다”라고 했다. 선수를 줘야 하는 한화는 이 부분까지 고려한 전략이 필요한데 셈법이 복잡하다.
결국 한화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은 자연히 FA시장에서 쓴 맛을 볼 공산이 커 보인다. 현재 이 선수들은 구단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 날 자존심을 굽히고 요구액을 낮출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이날이 지나면 선수들의 가치는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출구 전략을 잘 짜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편 원소속팀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이 선수들이 타 구단들과 계약하지 못할 경우 4일부터는 모든 구단들과 협상할 수 있다. 이미 모든 팀들이 한 번씩 지나쳤다는 점에서 가치 폭락이 예상된다. 극적인 반전이 있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원소속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원소속팀들이 기존에 제시했던 금액을 그대로 유지해 자존심을 살려줄지, 아니면 냉철한 시장의 평가를 재확인시킬지도 관심사다.
반응은 엇갈린다. 1~2명의 선수는 2차 협상기간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원소속팀과 원만한 계약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대로 어떤 선수의 경우는 “구단이 이런 상황을 계산하지 못하고 다른 선수에 예산을 다 써 금전적인 여력이 많지 않다”라는 소문이 파다해 난항을 배제할 수 없다. 자신의 가치가 몇 억씩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됐다. 행운의 여신은 누구를 향해 웃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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