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구단은 12월 2일 1, 2군 코칭스태프 구성을 발표했다. 이미 예견됐던 일이지만,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진 2014년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류택현(43)은 2군 투수 코치로 이름을 올렸다.
투수부문 개인통산 최다 출장기록(901경기)을 보유하고 있는 류택현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선 시점에서 그렇게 조용히 그라운드를 떠나 이제 후배들을 가르치는 길로 들어섰다. 착잡한 감회야 왜 없겠는가. 당연히 아쉬움도 남을 터.
“마지막 경기가 된 4월3일 SK전에서 스캇한테 홈런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남들은) 아, 구위가 안 되는구나하고 봤을 것이다. 나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과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류 코치는 그 때 자신의 32년 야구선수 생활이 끝났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그 길로 2군으로 내려가 5월 초까지 몇 차례 더 등판했다가 좌완 유망주 임지섭(19)을 전담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실상 코치로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의 올해 기록은 2경기 출장에 1이닝 동안 6타자를 상대해 14개의 공을 던졌고 3피안타(2홈런) 자책점 27.00이었다. 3월 29일 두산전에 등판, 4타자를 상대한 가운데 오재원에게 초구 홈런을 내줬고, 4월 3일 SK전에선 스캇에게도 초구 홈런, 박정권에게 안타를 얻어맞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의 프로 통산 기록은 901경기, 614 2/3이닝 동안 2696타자를 상대했고 15승 29패, 6세이브 122홀드, 536탈삼진, 평균자책점 4.41이다. 2007년에 최다홀드(23홀드)를 기록한 것이 그의 유일한 타이틀이다. 화려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 불펜에서 기다렸던 ‘대기인생’이었다. 그의 기록은 역사의 한 갈피에 묻혔다.
코치 임명 발표 전날, 류택현의 선수생활 소회를 들었다.
-이렇게 선수생활을 마감하게 돼 아쉬움이 많겠다.
“프로야구가 시작됐던 1982년 서울 도곡초등학교 5학년 때 글러브를 끼었으니 햇수로 32년입니다. 1994년 OB 베어스 입단으로 친다면, 프로선수 생활은 20년이지요. 아직도 더 던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선수생활 연장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은퇴 경기나 은퇴식 없이 흐지부지 그만두게 된데 대해 서운함은 없는가.
“(구단이)나중에 해주겠지요.(웃음)
-마흔세 살, 최고령 선수였다. 노하우?
“노하우가 뭐 있겠어요. 제가 도인(道人, 도 닦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일상적인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가급적 인스턴트 식품은 피하는 식입니다.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이고 더 할 수 있는 것을 더하는 것, 결국 그게 최고의 관리 아닌가요. 안 좋은 음식 피하고 이왕이면 건강식으로 했다는 것 정도. 낙지를 제일 좋아하지만 채소 위주로 하되 고기도 먹고 먹을 것은 다 먹었어요. 고단백질 섭취를 하기 위해 계란도 많이 먹었고. 체중관리가 곧 체력관리입니다. 몸무게도 프로에 처음 들어왔을 때 82kg가량, 현재 86kg로 별 변화가 없어요.”
-기교파, 머리를 쓰는 투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중에는 원포인트였고, 좌완투수의 이점도 있었겠다. 장수(長壽)와 연관은?
“좌완투수 이점? 당연히 있었겠지요. 불펜투수였으니까 전력투구는 기본입니다. 저는 볼 회전을 중요시합니다. 단순한 스피드 보다는 타자가 느끼는 체감속도가 중요하지 스피드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143,4 km나오다가 작년에 140km를 찍은 적이 있고, 보통 138,9km였는데, 사실 볼끝이 중요하지요. 볼 끝이 살아 있으면 타자가 더 빠르게 느낍니다. 두산의 유희관이 133km느린 볼을 던진다고 하지만 타자들이 느끼는 것은 아마도 140km이상 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앞에서 던지면 컨트롤 좋아지고 종속이 좋아져 스피드도 떨어지고 공 부러짐도 적고. 회전을 많이 넣는 쪽으로 투구를 하려고 노력했지요.”

-요즘 후배 투수들, 어떤가.
“마인드는 좋은데, 언론에서 스피드 투수, 강속구 투수 포장이 많이 돼 너무 스피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컨트롤이 안 돼 오히려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게 됩니다. 좋은 컨트롤이 있어야 자신감이 생기는데 스피드만 신경 쓰다가 볼카운트가 몰리면 아무래도 볼넷 부담이 있으니까 좋은 공을 던질 수 없지요. 컨트롤이 바탕이 돼야 더 빨라질 수 있는데, 스피드 부담 때문에 오히려 저하되지 않나 싶어요. 스피드 올리는 연습이 아닌 컨트롤 가다듬는 쪽으로 연습하다보면 스피드는 쫓아오게 되지요.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로 전향하는 게 바람직한가’하는 의견이 있다. 외곽에서 공부나 연수를 한 다음 지도자로 나가는 게 어떨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무작정 일본 같은 데서 연수를 하는 것보다 2군에서 1, 2년 코치수업을 하고 난 뒤에 가는 게 낫다고 봅니다. 무작정 가면, 뭘 배워야 될지, 뭘 물어봐야 될지 모르잖아요. 코치를 해보고 어느 정도 정립이 되면 무언이 자신에게 부족한지, 다른 나라 코치들은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보는지 배울 수 있지 않겠어요. 무작정 가는 것보다 준비된 상태에서, 뭘 배울지 정하고 가는 게 낫겠지요.”
-투수 지도의 중점은 어디에 둘 것인가.
“개인마다 전문분야가 다르겠지만 우선 투구 폼을 위주로 한 지도서 같은 책은 안 봅니다. 이를테면, 통계학 관련이나 ‘어느 쪽으로 근육을 쓰는 게 도움이 되는지’ 같은 트레이닝 파트가 중요 하다고 봅니다. 투구 폼으로 된 책들이 있지만 그 사람 생각을 적어 놓은 것이고,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이론이나 다른 사람들 의견보다 선수들이 어떤 상태인지를 보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폼을 따라하는 것 오히려 안 좋은 방법 중 하나예요. 근육 힘을 더 기르고 빼고 하는 쪽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야구선수생활 30년, 프로생활 20년이다. 기억에 남는 일은.
“아무래도 제일 마지막 경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이 게 아니다 싶어요. 마지막 경기(4월 3일)에서 홈런을 맞고 내려오니까, 너무 억울하다고 해야 되나, ‘왜 거기까지 밖에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더군요. SK 스캇에게 초구에 홈런을 맞았어요. 스캇이 초구를 잘 안 치는 선수여서 스트라이크를 잡는다고 방심 이상으로 안이하게 생각했지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었지요. 그러고 내려와서 못 올라갔어요. 많이 던진 것은 아니었지만 근년에는 3, 4, 5번을 상대하면서도 1년에 두어 개 밖에 안 맞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구위가 안 되는구나하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뭐 결과는 그게 아니니까. 결과를 보고 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고, 팀 사정도 있었고, 그런 게 좀 아쉬웠지요.”
-선수생활 과정에서 터득한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준다면.
“모죽(毛竹) 얘기를 해주고 싶네요. 대나무 모죽은 아무리 물을 줘도 5년 동안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하루에 80cm도 자랍니다. 그런 것처럼 2군 후배 선수들도 그만큼 뿌리를 깊이 다지면 어느 한순간 야구를 깨칠 수가 있습니다. 준비가 잘 돼 있으면 그런 계기를 잡고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면 바람에 뿌리가 뽑힐 수도 있고, 준비를 잘 하고 있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1군에 올라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져야 롱런할 수 있다’,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불가(佛家)에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말이 있다. ‘어느 날 문득 깨우침을 얻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수련이 필요하다’, 그런 뜻 일 터인데, 야구선수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경구다. 이 시대의 불펜 전설이었던 류택현, 그도 지도자로서 후배들에게 그 같은 얘기를 전하고 싶은 듯하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