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 연예산책]바둑에서 미생은 아직 생사기로가 불분명하다. tvN 드라마 '미생'은 다르다. 살 길을 찾은 지 오래다. 중견 이성민을 축으로 신예 임시완과 강하늘이 일찌감치 신의 한 수를 놨기에 가능했다. 이성민과 임시완 그리고 강하늘, 이 세 배우를 알면 드라마 '미생'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성민은 '미생'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역은 제국의 아이들 출신 '연기돌' 임시완의 몫이다. 하지만 오차장 이성민의 존재감은 '미생'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 한다. 그는 원래 그런 배우다. '모래시계' 최민수마냥 카리스마 특화의 배우가 아님에도 그의 연기 하나 하나에는 거스르기 힘든 열정과 정열이 묻어난다. 어느 순간 이성민을 보는 시청자 몸이 오싹하면서 으스스 떨릴 정도로. 시쳇말로 이게 진짜 카.리.스.마! 연기력 갑의 세상이다.
연극무대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오로지 연기 한 우물을 판 지 벌써 27년차, 바야흐로 이성민 전성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에게 주연이나 조연 타이틀은 상관없다. 자리와 캐릭터야 어찌됐건 극 안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적이 없으니까.

가깝게는 2012년 '골든 타임'의 천재 외과의사 최인혁을 들 수 있다. 주인공 이선균이 아직 어설픈 인턴으로 비치는데 결정적인 선배 의사의 카리스마를 이성민이 연기했다. 자신도 빛나지만 상대역을 더 빛나도록 하는 연기는 기존의 연기파로 불리는 배우들에게서도 거의 찾기 힘든 미덕이다. 일부 연기파 배우는 자신의, 자신을 위한, 자신에 의한 연기에 더 몰두하곤 한다. 이럴 경우 생명력이 의외로 길지 않다.
이외 드라마 '브레인', '파스타', 영화 '변호인', '방황하는 칼날', '군도:민란의 시대', 그리고 가장 최근의 '빅매치'에 이르기까지 이성민은 늘 반짝반짝 모든 뱃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는 북극성 역할을 했다. '미생'의 오차장도 그렇다. 임시완과 강하늘이 연기와 실제, 양 쪽에서 모두 그를 보고 배우면서 연기자로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2014년은 임시완의 해임에 분명하다. 연기돌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연기자로서의 틀을 공고히 다진 해이기에. 제국의 아이돌에 속한 아이돌 가수라는 사실이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김수현을 신데렐라로 만든 사극 '해를 품은 달'을 통해 데뷔한 임시완은 영화 ‘변호인’으로 얼굴을을 알리고 ‘미생’ 장그래로 이름을 남겼다. 유례없이 빠른 성장이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고 기본기가 탄탄하다. 단시간에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오른 배경이다.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을 맡았던 그는 가혹한 고문을 당한 대학생의 섬세한 감정선을 자연스러운 사투리 속에 풀어내는 저력을 드러냈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신인남우 후보에 올랐던 게 절대 과대 포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미생'의 장그래로 빙의한 그는 이제 '임시완 세상이야!'를 외치는 중이다.
그리고 강하늘. 국내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신세계' 황정민이 키워낸 인재답게 서둘지 않고 천천히, 한 발짝 한 발짝 단단하게 자신의 연기 족적을 만들어 가는 신예다. 겉보기에 화려하지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장래가 기대되는 충무로의 젊은 피가 바로 강하늘이다.
먼저 '천상시계'를 시작으로 '쓰릴 미', '스프링 어웨이크닝', '블랙메리포핀스' 등 다양한 뮤지컬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강하늘은 요즘 가장 핫한 스타로 떠올랐고 지난 여름 호러물 '소녀괴담' 주연을 맡아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 그리고 '미생'의 장백기 역할은 선과 악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 시대 88만원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로 공감을 사고 있다.
뮤지컬을 통해 쌓은 내공으로 드라마 '엔젤 아이즈', '상속자들'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더니 '미생'으로 슬슬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다. '소녀괴담'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기를 펼친 덕분에 '스물', '순수의 시대', '쎄씨봉' 등의 작품들에 연이어 캐스팅 되어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들 셋이 등장한 지난 5일 '미생'. 오 과장의 미션을 받은 장그래와 그를 돕는 장백기. 소주 한 병 나눠 마시고 속옷장사에 나섰다. 마치 이성민의 트레이닝을 받는 임시완과 강하늘이 기쁜 마음으로 연기 도전에 나서는 이면을 드러다보는 즐거움을 시청자에게 안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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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