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었다.
돌을 잃어도 게임은 계속됐고, 그 과정에서 줄을 잡았다가 놓치고, 놓쳤다가 겨우 잡고, 잡을 듯 했는데 제 손으로 잘라버렸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미생'은 서슬 퍼런 사내 정치에 휘말린 직장인들의 민낯을 드러내며 큰 공감을 샀다. 동아줄을 잡기 위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 기껏 잡았다가도 얼마나 어이 없게 놓칠 수 있는지 촘촘한 에피소드로 소개됐다.

장그래(임시완 분)는 도무지 줄을 제대로 설 수 없는 계약직 신세. 오로지 실력만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을까? 회사는 "어차피 나갈 사람 키우지 않는다"며 그나마 진행하던 일조차 빼앗아 정직원에게 넘겨주라고 한다.
따뜻한 상사 오차장(이성민 분)은 당연히 반발하지만 별 힘은 없다. 그렇다고 회사에 맞설 수 있을까. 먼저 회사에서 나간 선배는 "회사 밖은 지옥"이라며 오히려 회사에 돌아오고 싶어한다. 현재 지옥에 빠져있는 선배의 말은 힘이 세다.
"그때 버텼어야 했나. 좀 더 정치적으로 살아야 했나. 줄을 잡아보려고 시도라도 했어야 했나. 잠을 못자겠다, 후회가 밀려와서."
일 잘하는 안영이(강소라 분)는 본사도 맘에 들어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오히려 혼났다. 마부장이 밀어주고 싶은 건 다른 팀인데, 엉뚱하게 안영이의 아이디어가 채택됐기 때문이다. 마부장은 "니가 못하겠다고 해"라고 말한다.

두달이 넘게 준비해온 아이템에 대해 자기 손으로 "못하겠다"고 메일을 보내야 하는 심정. 안영이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마부장에게 가서 "생각해보니 내 아이디어가 모자라기도 했다"면서, 어차피 있지도 않을 마부장의 양심까지 만족시켰다.
상대가 안죽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서 장그래나 안영이 편을 드는 건 "감상적인" 일이다. 장그래의 편을 든 오차장과 안영이를 두둔한 정과장(정희태 분)은 모두 그런 취급을 받았다.
정과장은 "너 진급 안할래?"라는 마부장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안영이에게 '양보'를 지시했다. 그렇게 마부장의 줄을 잡는듯했지만 그 줄을 끊어버린 건 황당하게도 자기 자신이었다.
일이 조금 어긋났다고 자신과 부원들의 몸을 기분 나쁘게 밀어대는 마부장에게 "손찌검 하지 말아달라"고 말해버린 것. 그동안 그토록 노심초사하며 비위를 맞추고 안영이 앞에서 체면까지 구기며 아이템 포기를 부탁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장그래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아이템 담당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달라고 한다. 그렇게 위협적인 '을'에서 어쩔 수 없는 '을'이 되자, 장백기(강하늘 분)의 마음은 열렸다. 그는 이제야 장그래에게 "내 스펙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 동등했을 땐 싫었지만, 또 처지가 달라지니 복잡해지는 심경. 장백기는 어찌보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정치력은 경력이 쌓인다고 늘지 않는다. 그저, 타고난 성격이다. 그래서 차장이든 과장이든 정직원이든 계약직이든 힘든 사람은 여전히 힘들다. 유전자가 그런데 별 수 있나. 그래서 만만한 일은 당최 보이지 않고, 편한 날은 절대 오지 않는다.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다. 흔들릴 때마다, 회사 밖에 펼쳐질 지옥의 한 광경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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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