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하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제 '모던 파머' 전후로 나뉠 듯 하다. 관능적이거나 지적인 캐릭터에 머물던 그의 이미지가 보기 좋게 깨졌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오후 방송된 SBS 주말드라마 '모던 파머'(극본 김기호, 연출 오진석) 15회에서는 미혼모 윤희(이하늬)의 과거가 드러났다. 그동안 씩씩하고 밝은 '농므파탈'(농부+팜파탈) 윤희의 애처로운 '진짜 얼굴'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날 윤희는 민호(황재원)의 친부 현석(이재우)을 만난 뒤 지난날을 떠올렸다. 8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고 이후 윤희는 당시 초등학생인 동생 홍구(김재현)을 돌보기 위해 현석과의 유학길을 포기했다. 미래가 창창한 피아니스트였던 윤희가 시골 마을 이장이 된 이유였다. 현석의 등장 이후 애써 밝은 척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민기(이홍기)는 그런 윤희를 걱정했다. 소에 먹이를 주는 윤희를 찾아가 민기는 "억지로 웃는 거 그만하라. 보기 싫다"며 "나도 왜 누나의 표정, 눈빛, 말투 하나하나에 신경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희는 결국 "네가 나를 신경 쓰는 이유는 미혼모인 옛 첫사랑에 대한 연민, 동정, 그런 것 아니냐.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고 화냈다. 민기에 대한 서운함과 속상함 등 윤희의 속내였다.
한동안 이하늬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그의 출신이었다. 2006년 미스코리아 진이란 연예계 데뷔 계기, 서울대학교 국악과라는 학력 등이 그것이다. 이후 KBS 2TV '파트너'(2009) '상어'(2013) MBC '파스타'(2010)와 영화 '연가시'(2012)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 등이 출연했지만 배우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지난해 2월 윤계상과의 열애 소식을 알리는 등 화제성이 좀 더 앞서는 스타에 가까웠다.
그런 이하늬가 대중과 가까워진 계기는 지난 5월 종영한 MBC 예능프로그램 '사남일녀'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 보다 놀라운 것은 어른들을 대하는 살가운 태도였다. 몸무게를 공개하는 털털함도 놀라움을 줬다. 여기에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타짜-신의 손'은 이하늬의 재발견이었다. 그가 맡은 우사장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 섹시한 인물이었다. 악녀와 푼수 경계를 외줄타기 하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담아냈다.
'모던 파머'는 한 걸음 나아가 코믹과 멜로 등 이하늬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쁜 여배우가 처음부터 거침없이 망가졌다.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과장된 표정과 몸동작으로 웃음을 안겼다. 때론 막춤과 노래로 반전을 선사했다.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애절한 감정 연기로 안방극장을 울리고 있다. 그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여느 신인들처럼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단 사실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이 됐다.
그는 '모던 파머' 이후 내년 1월 MBC 새 월화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로 행보를 이어간다. 쉼 없는 작품 활동이다. 그의 진가를 제작자들이 알아봤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제 각종 불필요한 수식어는 떼어버리고, '배우' 이하늬로서 나아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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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파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