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인연이 또 그렇게 됐네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6년 가을. 한화는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사투를 벌였다. 결과는 1승4패1무.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으나 결국 삼성의 벽에 무릎을 꿇었다. 정확하게는 삼성의 에이스 배영수(33)에게 무너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시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는 선발과 구원을 넘나들며 5경기 2승1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0.87로 위력을 떨쳤다. 팔꿈치 수술을 앞두고 인대가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삼성 우승을 위해 진통제를 먹어가며 투혼을 던졌다. 한화에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그는 이 우승을 끝으로 팔꿈치 수술을 받고 강속구와 이별한다.

인연이란 참 얄궂다. 8년의 세월이 흐른 2014년 겨울, 배영수는 삼성을 떠나 한화에 새둥지를 텄다. 배영수는 8년 전 가을을 떠올리며 "우연찮게 인연이 또 그렇게 됐다"며 웃은 뒤 "한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내가 갖고 있는 역량에서 죽을 힘을 다해볼 각오다.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삼성은 그의 야구인생 추억으로 묻어둔다. 이제는 '한화 배영수'로서 준비한다. 그는 지난 3일 한화와 계약을 맺은 다음날 대전에 왔다. 눈발이 흩날리는 궂은 날씨에도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한화와 김성근 감독이 필요로 했고, 배영수도 한화를 위해 남은 팔꿈치 인대를 다 바칠 각오.
배영수는 "프로야구를 시작하며 4강에 안 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프로라면 우승을 목표로 해야 한다. 될지 안 될지는 부딪쳐봐야 한다"며 "4년 연속 우승을 해서 그런지 한화에서도 우승을 하고 싶다. 나의 힘이든 동료들의 힘이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정해지면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다"고 기대했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과 14년 만에 재회한 것이 그에게는 아주 뜻 깊다. 2000년 신인으로 삼성에 입단했을 때 2군 감독이 김성근 감독이었다. 배영수는 "감독님 밑에서 운동을 많이 했다. 기술적인 것은 당연하고, 정신적으로도 제대로 형성된 것이 없었는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몸은 몰라도 정신적 한계는 없다는 것을 배웠다. 여러 가지로 좋았었다"고 회상했다.
이제는 30대를 넘어 김 감독을 다시 만났다. 지옥훈련으로 유명한 김 감독과 재회가 걱정되지는 않을까. "신인 때도 감독님이 하루에 500~600개씩 공을 던지게 했다. 훈련량이 많기는 많지만 버틸 수 있는 정도는 된다. 훈련량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운동선수가 훈련을 겁내는 건 말이 안 된다. 많이 하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김성근 감독은 "우리 투수들이 배영수를 보고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전력은 물론 '멘토'로서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 배영수는 "이제 새로운 후배들이 생긴다. 챙겨줄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챙겨주겠다"며 "지금은 내가 대전에 처음 가는 것이다. 내가 먼저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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