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쪼개기] '미생' 그래, 취하는 것도 사치다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4.12.07 10: 59

'고졸 낙하산', '계약직' 신입사원에게는 취해있는 것조차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 그게 현실이었다.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가 엔딩을 장식하며 자그마한 '희망'을 품게한 지 고작 1주일 만이다.
지난 6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 16회에서 장그래(임시완 분)는 두 달간 꼬박 자신이 공들였던 첫 번째 아이템을 다른이에게 넘겨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단지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멍하니 계단에 앉아서 한 숨을 쉴 틈도 없었다. 그나마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그래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당 아이템을 포기하는 방법 뿐이었다. 장그래는 그렇게 오차장(이성민)에게로 가 아이템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 장그래가 오차장은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퇴사 후 장사마저 실패한 선배와 술잔을 기울이던 오차장은 장그래의 이야기를 그에게 건넨다.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다"고. "어린 친구가 취해있지 않다"고 했다. 귀가하던 길 장그래에게 전화를 건 오차장은 "취해있지 마라"고 조언한다. 장그래 역시 "취해있지 않다"고 짧게 답할 뿐 별다른 말은 없다.
이 모습은 앞서 요르단 사업 프리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성과를 냈던 영업3팀이 '파이팅'을 외치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오차장이 건넨 첫 번째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적힌 '더할 나위 없었다, YES!'라는 문구를 보고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던 장그래다.
그날의 장그래는 샤를르 보들레르의 '취하라'라는 시를 읊조렸다.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며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서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을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고.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라고. '이제 취할 시간이다'라고 마무리 됐던 지난 13화의 옥상 엔딩신이 나온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그렇게 계약직 사원으로서 잠시나마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품게했던 일은, 결국 현실의 벽과 부딪혀 처참하게 부서졌다. 고졸 낙하산이, 신입사원이, 계약직이 취할 시간은 모두 끝났다. 매 순간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앞에 처한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고 반응해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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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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