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레전드 코치들이 모두 사라졌다.
한화는 지난 7일 장종훈 타격코치가 사직서를 내고 팀을 떠났다. 1986년 빙그레 시절부터 29년을 몸담은 독수리 둥지였지만 개혁의 바람이 부는 팀에서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장종훈 코치에 앞서 송진우 정민철 한용덕 강석천 조경택 등 수년간 팀을 지켜온 코치들이 떠났다. 전면 개혁과 정통성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갈림길이었다.
▲ 개혁과 흔들리는 정통성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대대적인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했다. 김 감독 부임 후 일차적으로 8명의 코치들이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이 때 송진우 투수코치, 강석천 수비코치, 조경택 배터리코치가 물러났다. 이어 정민철 투수코치가 사직서를 제출하며 팀을 나왔다. 한용덕 단장특보도 현장 복귀를 위해 두산 이적을 결정했고, 장종훈 코치까지 롯데로 이적했다.
한화가 2009년 이후 최근 6년 사이 5번이나 최하위에 그치며 레전드 코치들의 입지는 크게 좁아져 있었다. '책임론'이 제기된 것이다. 김성근 감독 부임 후 레전드 코치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비웠다. 새 코치들이 대거 영입돼 레전드 코치들의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프로 세계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 한화는 강한 쇄신이 필요한 팀이었고, 안타깝지만 불가피하게 레전드 코치들이 그 대상이 됐다.
개혁은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조치다. 그러나 정통성마저 흔들리는 것을 두고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 야구인은 "레전드 코치들이 한화에 남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구단에서도 나서 만류했지만 강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운 코치들이 들어오며 역할이 모호해졌다. 처음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겠지만 이전의 팀이 부정되고 다른 코치들이 떠난 상황에서 그런 마음먹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모 선수는 "솔직히 선수를 은퇴한 이후 코치를 기대하며 팀을 위하려는 분위기가 한화에는 있었다. 레전드 코치님들이 모두 떠나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화는 다른 팀보다 로열티가 강한 집단이다. 그룹 사훈도 신용과 의리. 그러나 성적을 내야 하는 프로에서 영원한 건 없었다. 한화 특유의 충성심 높은 분위기 유지가 숙제로 떠올랐다.
▲ 책임 통감과 새로운 도전
탈꼴찌 희망마저 사라진 시즌 막판 모 코치는 "내가 잘 못 가르친 탓이다. 팀 성적에 책임을 느낀다. 떠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자책했다. 또 다른 코치는 "매년 팀 성적 때문에 팬들을 볼 면목이 없다. 경기내용이 안 좋을 때에도 끝까지 응원해주는 팬들을 보며 나 자신에게 창피하기도 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코치들도 팬들의 비난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한화 모 선수는 "우리 선수들이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코치님들은 열심히 하셨는데 우리 선수들 때문에 물러나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가장 상징성이 큰 장종훈 코치와 이별은 선수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또 다른 선수는 "팀을 대표하신 분이셨는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제 레전드 코치들은 독수리 둥지를 떠나 새로운 출발선에 마주했다. 한용덕 강석천 조경택 코치는 나란히 두산으로 옮겼고, 송진우 정민철 코치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변신한다. 장종훈 코치는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1999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영광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추억이다. 찬란한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모 코치는 "청춘을 다 바친 곳이지만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번에 물러난 레전드 코치들의 공통점은 해외에서 연수 받을 때를 제외하면 한화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한화를 떠나 다른 팀과 새 환경에서 여러 시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도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한화 관계자들은 "비록 지금은 다들 떠났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가슴이 아프지만 더 좋은 지도자가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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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송진우-정민철-한용덕-강석천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