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는 숨을 죽였다. 방망이는 신이 났다. 균형추는 무너졌고 핸드볼 스코어의 양산에 “야구가 아니다”라는 한탄까지 나왔다. 역사적인 타고투저 시즌을 보낸 한국프로야구는 그간 화려한 화장 속에 가려져 있던 마운드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끊임없는 노력이 계속되지 않는 이상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올해 수혜를 누렸던 타자들도 언제든지 피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
2014년 한국프로야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타고투저였다. 투수들이 주도하던 흐름이 점차 타자 쪽으로 넘어오더니 올해는 절정을 찍었다. 2012년 3.82였던 리그 전체 평균자책점은 2013년 4.32를 거쳐 올해는 5.21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평균보다 나은 성적을 낸 팀은 딱 하나, NC(4.29) 뿐이었다. 이에 비해 팀 타율은 2할8푼9리까지 치솟았다. 10번 중 3번만 쳐도 성공이라는 야구에서 팀 타율 3할의 팀(삼성)도 나왔다. 타고투저의 광풍을 실감할 수 있다.
몇몇 외부적 원인이 거론된다. 우선 좁았던 스트라이크존이다. 한 팀 감독은 자신의 말이 기사화되는 것을 꺼려하면서도 “확실히 스트라이크존이 좁다”라고 분석했다. 자연히 투수들이 던질 곳이 사라지면서 타자들이 힘을 냈다는 뜻이다. 한 심판위원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시즌 중에 스트라이크존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여기에 시즌 중에는 공인구의 영향으로 비거리가 더 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올 시즌 제도 개선으로 대거 등장한 외국인 타자들도 무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외부적 원인은 어디까지나 외부적 원인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짚고 가야 한다. 바로 투수들의 질적 저하다. “쓸 만한 투수들이 없다”라는 현장의 볼멘 목소리와도 궤를 같이 한다. 투수 출신인 선동렬 전 KIA 감독은 올해 극단적인 타고투저에 대해 “투수들이 성장하지 못한 탓”이라며 쓴소리를 날렸다. 양상문 LG 감독 등 다른 투수 출신 감독들의 목소리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타자들의 발전 속도를 투수들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성과에 도취됐던 마운드가 폭탄을 맞았다는 시각이다. 야구 인기가 한참 오르던 2008년까지만 해도 한국프로야구의 지배적 흐름은 마운드에 있었다.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의 ‘트로이카’를 비롯, 좋은 투수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다. 신인 투수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발전이 없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어린 투수들은 고교 시절의 혹사로 대부분 어딘가가 아팠다. 현장에서는 그 핑계를 대며 ‘투수 키우기’에 손을 놨다. 구단은 육성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는 값싼 외국인 선수를 선호했다. 불행하게도 악순환의 3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
여기에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던 투수들이 속속 해외행을 선택하자 인적 인프라는 더 약해졌다. 반면 외국인 선수들이 선발 마운드 두 자리씩을 차지한 한국프로야구에서 국내 선수들의 발전은 양과 질 측면에서 모두 더뎠다. 한 해설위원은 “류현진 김광현 윤석민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할 만한 토종 투수도 없다. 신인 투수들이 깜짝 활약을 하는 경우도 사라졌다.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지면서 다소간 수혜를 볼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부터는 10구단 kt의 가세로 144경기 체제가 벌어진다. 필연적으로 마운드 운영 전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6선발을 택하는 팀도 있을 것이며, 롱릴리프의 몫을 늘리는 팀도 있을 것이다. 각 구단별로 모두 투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자원은 한정적이다. 새롭게 10승을 거둘 만한 투수들은 없고 기존 선수들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 투수에 대한 의존도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2015년은 프로야구 마운드 역사상 최대의 위기다.
그렇다면 타자들은 계속 웃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타자들의 발전 속도가 투수들에 비해 빨랐던 것이지, 절대적인 수준에서 빨랐다고는 볼 수는 없다. 지난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 그다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파티에 안주한다면, 언제든지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팬들은 양자 모두 노력하는 가운데 2015년에는 적당한 접점을 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야 프로야구 수준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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