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팀 감독으로 부임한 뒤 가졌던 첫 훈련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 나름대로 기존에 해 왔던 것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 훈련량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공을 때리는 훈련은 좋아하는데 받는 훈련은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계속된 하위권 추락에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던 흥국생명은 그렇게 기량부터 자신감까지 쪼그라 들어있었다.
분위기도 문제였다. 매 시즌 새로운 감독들이 오다보니 팀에는 체계가 없었다. 선수들은 어떤 박자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박 감독은 과감히 분위기를 바꿨다. 화려해 보이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기본과 집중력을 중시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선수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꾸준히 밀어붙인 결과는 값지다. 선수들은 승리를 통해 보람을 얻고 있다. 자신감이 붙자 미녀 거미들이 엮는 줄도 단단해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번 V-리그 여자부 초반 판도의 최대 복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시즌 최하위권에 있었던 팀이 단번에 선두 경쟁을 하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센터 김수지, 당찬 신인 이재영의 가세 등을 호재로 뽑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팀이라고 해서 가만히 놀고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국 팀 조직력, 그리고 분위기에서 상승세의 원동력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끈끈한 조직력의 배구, 한 명에 의존하지 않는 배구로 이어졌다. 흥국생명의 경기력이 타 팀과 다소간 차별화를 갖는 이유다.
범실의 최소화는 상징적인 척도다. 김연경 황연주 전민정 등이 버티던 시절, 흥국생명은 화려한 공격의 팀이었다. 범실이 많다고 해도 공격력으로 상대를 윽박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박미희 감독도 “190㎝의 공격수가 세 명이 있어 대충 올려줘도 해결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현실을 짚었다. 그래서 첫 발을 떼는 기본적인 움직임부터 차근차근 해나갔다. 화려함보다는 실속을 추구했다. 그런 땀방울이 모이자 범실이 줄어들고 있다. 실수가 줄어들면 선수들의 자신감은 더 붙는다.
흥국생명의 지난해 범실은 총 661개로 여자부 6개 구단 중 가장 많았다. 가뜩이나 화력이 약한 상황에서 번번이 팀의 발목을 잡은 요소였다. 그러나 올 시즌은 8일 현재 213개로 리그에서 가장 적다. 세트당 범실도 5개 남짓으로 IBK기업은행에 살짝 뒤진 2위다. 승부처에서 공격이 아니더라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또 하나 생겼다는 의미다. 처음에는 이 수치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했던 박 감독은 “그런 것이라도 있었으니 이렇게 버틸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미소 지었다.
왕도는 없었다. 열심히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앞으로도 왕도는 없다. 계속 열심히 할 뿐이다. 박 감독 또한 탄탄해진 조직력, 그리고 줄어든 범실에도 만족을 모른다.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질책도 한다고 실토(?)한 박 감독은 “항상 수비를 강조하는 편이다. 2단 연결의 연습량을 많이 두고 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범실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박 감독은 "늘 조심스럽다. 리그는 길고 컨디션도 유지해야 한다. 조송화와 같은 경우는 몸부터 신경 쓸 것이 많다. 요즘에는 선수들이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한다"라고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하지만 박 감독이 코트 내에서 중요시하는 첫 발과는 다른 의미의 첫 발을 뗀 흥국생명이다. 처음과는 분명 다르다. 이제 선수들은 “왜 이런 훈련을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다. 능동적인 훈련은 대개 효율적인 성과를 낳는다. 이처럼 흥국생명이 선순환의 궤도에 올랐다. 시즌을 치러가면서 고비는 몇 차례 찾아오겠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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