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의 보컬 이현섭은 한달째 술 없이 잠을 자지 못한다.
음악적 스승 신해철을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낸 것도 슬프고, 갑자기 자신에게 들이닥친 막대한 부담감도 막중하다. 지난해 넥스트의 공동 보컬로 낙점된 후 생전에도 신해철은 "욕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마음 굳게 먹어라"라고 했는데, 신해철이 떠난 지금 이현섭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너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에게 신해철은 음악 선배인 동시에 형이었고, 가족이었다. 처음 만난 2012년. 신해철의 작업실에 방음 문제가 있어 자신의 집 주위에 후배들의 녹음실이 있나 수소문하던 차에 노바소닉 김영석의 분당 녹음실을 소개했다.

"존경하는 선배였으니까 당연히 오케이였죠. 그런데 10분만에 바로 오셨어요. 성격이 급하시니까.(웃음) 제가 노바소닉에서 넥스트 멤버들과 함께 했던 동생이라 따뜻한게 있었던 거 같아요. 하루 작업하시더니 몇 번 더 하러 오시더라고요. 형님이 워낙 잘해주신데다, 저도 외모는 소도둑 같아도 귀여운 구석이 있거든요.(웃음) 제가 상황이 힘든 걸 아시고 녹음실은 인수해주셨어요. 그리고 계속 함께 하게 됐죠. 작년 봄 쯤에 슬슬 그런 얘길 하셨어요. 넥스트 보컬로 참여해보지 않겠냐고."
이현섭은 중고음 보컬이었고, 신해철은 중저음 보컬이었기에 정반대라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오히려 녹음을 하다보면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명의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형이 녹음해보고 너무 놀라했어요. 나는 내 스타일대로 불렀는데, 그렇게 나온거죠. 선공개한 '아이 원 잇 올' 앞부분도 사람들이 잘 구분하지 못해요. 뒤에서는 나뉘긴 하는데. 공개될 곡 중 한 곡 ‘리얼월드’도 들어보시면 되게 조화가 잘돼요."
‘리얼월드’는 지난해 가을 신해철이 조카 중 수험생을 생각하며 쓴 곡이다. 가족애가 남달랐던 그는 수험생을 생각하며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 신곡을 써냈다.
"그 노래를 딱 듣고 형은 진짜 천재다, 마술사 같다고 했었던 기억이 나요. 녹음을 같이 해봤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죠. 그때 형이 살짝 자랑도 했어요. '이런 멜로디는 나 아니곤 못만들어'라고.(웃음)"
넥스트의 신곡 10곡 가량 녹음은 마쳤지만 대부분 후반 작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그야말로 '신해철이 아니면 못하는' 음악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아 아직도 작업이 진행 중이다.
"마무리와 디테일 등 다듬어야할 부분만 작업 중이에요. 조심스럽죠. 해철이 형 음악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누가 이 음악을 만질 수 있을까 그러다 보니 좀 더디게 진행 중이죠."
물론 부담감도 크다. 공동 보컬을 하자고 했을 때 '맹목적인 충성'을 맹세했던 그였지만, 신해철의 조언처럼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을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를 더 이해하게 됐다.
"형이 야단치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따르겠다고, 나가라면 나갈 것이고 오라하면 올 것이다고 맹세했었죠. 그런데 때로는 왜 형이 그런 말을 했지 의문이 들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한달 이상 지난 상황에서 생각해보니, 이제는 형이 완전히 이해가 돼요. 형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런 위치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더 형이 그리워요. 같이 있을 때 좀 더 형을 이해하고 잘했어야 하는데, 그래서 생각해보면 많이 외로웠겠다 힘들었겠다 싶어요. 뜻은 그게 아닌데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잖아요. 형의 위치가."
많이 혼나고 모진 말도 들었던 그는 신해철의 성격에 대해 "좀 괴팍한 면도 있었다"고 웃으며 인정한다.
"집중력이 엄청나세요. 뭐에 하나 꽂히면 무서울 정도로 모입해서 3일째 쪽잠만 주무시고 매달릴 때도 있었어요. 만약 어느 한 부분 베이스 연주가 맘에 안든다, 그러면 그 구간만 틀어놓고 며칠째 듣기만 하시는 거죠. 사실 대세에 큰 지장은 없을 거 같은데, 형은 정말 완벽한 걸 대중 앞에 내놓고 싶어하셨어요. 그래서 듣고, 고민하고 듣고, 고민하고.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사람 같았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정말 고문이죠. 그럴때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피곤한 척 하기도 했어요.(웃음)"
노바소닉 보컬로 활동하다 계속 음악 '언저리'에 있었다는 그는 사실 음악을 그만둘까 고민하던 차였다. 밴드, 솔로 활동을 하면서 빚만 져서 힘들었다는 그는 신해철에 대해 "벼랑 끝에서 꺼내준 존재"라고 감사해 했다.
"제 인생만 파란만장 한 줄 알았는데, 형은 정말 다양한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대중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파란만장하셨어요. 그래서 형한테 제가 힘든 얘기도 많이 했어요. 늘 따뜻하게 받아주시니까 너무 의지하게 된 거죠. 하루는 그만 징징대라며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 덕분에 정신차리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제가 철이 없었던 거죠. 사실 형도 철이 없긴 했는데(웃음) 음악적으로든, 동네 형으로든 정말 든든한 존재였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였고요.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받았으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고 다 퍼주는 스타일이셨어요."
이제 그는 슬픔을 추스르고 넥스트 새 앨범과 콘서트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 그는 저녁마다 혼자 매일 마시던 소주를 줄이고, 신해철과 함께라면 어땠을까 생각에만 빠져있던 일상을 수습하려 하고 있는 중이다.
"형이랑 트윈보컬로 나가도 당연히 욕 먹을거라고 예상했고, 형도 생전에 늘 상처받지 말라고 미리 말해주셨어요. 하다하다 안됐을 때 넥스트에서 나갈수도 있는 거고, 그럼 솔로 프로듀싱 해줄게 라고 말씀하셨었죠. 저한테는 완전 천군만마였죠. 이렇게 든든한 형이 어딨어요. 형은 그냥 즐겁게 하자, 안되면 또 내면 되지, 그런 말씀도 많이 하셨어요. 형이 해왔던거 만큼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그 뜻은 이어가고 싶어요. 나 할만큼 했어, 형. 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때까지 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지금도 신해철이 함께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기묘한 경험도 하게 됐다.

"형이 계속 암시를 주는 거 같긴 해요.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꿈에서 나타나서 얘기도 해주시고요. 한번은 형이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 고민하던 순간에, 넉달동안 한번도 안쓰러지던 책이 쿵하고 떨어진 적도 있어요. 기울어져있던 각도와 정반대 방향으로요. 사실 형이랑 얘기하다보면, 우주, 세계사, 스포츠, 미신 등 온갖 얘기에 박사가 되는 느낌이거든요. 엉뚱한 상상을 정말 많이 하셨죠. 그래서 더 생각나요.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계속 곁에 계신 느낌입니다. 그런 형에게, 추모 공연을 멋지게 보여드리는 게 저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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