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끝맺음이다. 지난 9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비밀의 문'(극본 윤선주, 연출 김형식)은 기대작으로 출발했지만 안타까운 작품으로 끝났다. 한석규와 이제훈의 재회, KBS 1TV '불멸의 이순신'(2004) '황진이'(2006) 등을 집필한 윤선주 작가, 숱하게 사용됐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 사도세자. '비밀의 문'엔 흥행 요소가 다분했다. 첫 방송 이후 극찬이 쏟아졌고, 2회는 월화극 1위를 기록했다. 섣부른 축포였을까. '비밀의 문'은 그 이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말 어려운 이야기였나
'비밀의 문'의 부제는 의궤살인사건이었다. 맹의를 둘러싼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축이었다. 다만 사건의 중심인 맹의가 작가의 상상력을 덧댄 창작의 산물이었고, 다소 친절하지 않은 전개에 일부 시청자들은 "너무 어렵다"고 불평했다. 무엇보다 이선(이제훈)이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정인도 아닌 친구 신흥복(서준영)의 죽음에 집착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오늘날 시청자들은 지나친 설명을 지루하게 여길만큼 똑똑해졌다. '비밀의 문'은 어렵다기 보다 그런 시청자들의 흥미를 충족시킬 만큼의 촘촘함이 없었다. 결국 맹의와 관련된 이야기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당초 기획의도는 추리극을 바탕으로 한 정치극이었으나, 미스터리가 무너지면서 관련 인물들도 애매해졌다. 이선과 함께 살인사건을 풀어가던 서지담(김유정/윤소희)이 대표적이다. 여주인공이었던 서지담은 후반부 주변인물로 머물렀다.
◇몰입할 수 없는 이상주의자
이선은 만민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다. 모든 것은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이선을 돕던 이종성(전국환)이 그에 대해 표현하는 대목이 19회에 등장한다. 이종성은 이선에 대해 "지나치게 파격적이다. 파격적이다 못해 무모하다. 그러나 그것이 젊음이다"라고 말했다. 젊기에 서툴고, 그렇지만 진보적인 지도자가 바로 '비밀의 문' 속 이선이다.
문제는 이 훌륭한 지도자를 마냥 지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영조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위태로운 물건'인 권력을 쥐었다. 노론과 소론 사이에서 오랜 세월 버틴 덕에 그는 정치 9단이 됐다. 정치의 논리는 뒷전이요, 마냥 평등한 세상을 희망하는 이선이 애송이로밖에 보일 수 없다. 이면에 뜨거운 부정(父情)이 있음에도 말이다.
반면 이선은 이렇다 할 명분이 없었다. 이선이 희망하는 세상은 오늘날 지도자들을 돌아보게 할 만큼 유의미하다. 하지만 그것이 조선시대라는 극중 배경 안에서 설득력 있게 그려지느냐는 다른 문제다. 마지막회에 이르러 자식을 위해 죽음을 택하기 전까지 이선은 숱하게 가족과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 그는 늘 영조 앞에서 울상이었다. 정해진 결말이라 어쩔 수 없지만, 그에게 좀 더 명분이 있다면 이선의 뜻을 이어받은 정조의 등장이 더욱 반가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극으로의 재미는?
사극은 종종 흥행 불패로 통한다. 고정 마니아 층이 있고 중장년층을 사로잡을 가능성도 높다. '비밀의 문'은 단 한 차례 10.0%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뿐 한 자릿수 시청률에 머물렀다. 프로야구로 인해 방송시간이 늦춰졌던 11회는 4.0%의 자체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올해 방송된 KBS 1TV '정도전', KBS 2TV '조선총잡이', MBC '기황후', '야경꾼일지' 등과 비교해 안타까운 성적표다.
정통사극과 팩션사극 사이에서 정체성이 명확한 위 작품들에 비해 '비밀의 문'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정통사극이라고 하기엔 역사고증과 거리가 멀다. 현대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신하가 임금의 이름을 부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팩션사극으로 본다면 흥미로운 요인은 미스터리뿐이다. 멜로는 없다. 결국 사극으로서, 추리극으로서 초반 시선끌기에 실패하면서 '비밀의 문'은 아쉬운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비밀의 문' 후속으로 '펀치'가 15일부터 방송된다. 정글 같은 세상을 상처투성이로 살아낸 대검찰청 검사들의 이야기다. 김래원, 김아중, 조재현, 최명길, 온주환, 서지혜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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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