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손남원의 연예산책]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메이저리그 특파원으로 몇 년 살았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달라스 모닝포스트나 ESPN 기자들이 한국 특파원 이름들을 희한하게 발음하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자는 '냄 쏜'이었던가. 현대자동차의 현대는 '현다이'였고 삼성전자의 삼성은 '쌤송', 최씨 성 한국인들은 모두 '초이'로 불렸다.
우리 말이 이렇듯 외지에서 혹사당하는 걸 세종대왕께서 아시면 통곡하시겠지만 상당수 한국인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서양인이 한국어 발음하기가 어디 쉽겠냐고 이해하면서. 거꾸로 미국 땅 안에서만 산 미국인들은 동양인의 어색한 발음에 인상을 쓰고 지적한다. 호텔이나 관광지 업소들은 덜하지만 우리네 동사무소 비슷한 관공서의 공무원을 접하면 ‘뭔 소리?(What)’를 연발탄으로 쏘아댄다.
뜬금없는 얘기를 꺼낸 건 월드스타 김윤진의 한국 이름과 얽힌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김윤진은 올해 미국 유력지 뉴욕 타임즈(NYT)의 신년호 엔터테인먼트 메인을 장식한 배우다. 한국 배우의 위상을 드높인 경사다. NYT는 미국 ABC 인기 드라마 '미스트리스(Mistresses)'에서 주인공 카렌 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김윤진이 처음부터 미국 시장에서 이처럼 대접 받은 건 결코 아니다. 2000년 최고의 인기 미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로스트’에 출연하기까지 그가 겪은 고생담은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어 생략한다. 김윤진은 ‘로스트’ 시리즈를 통해 동양 미녀의 신비한 매력과 강인함, 그리고 섹시한 미모의 3박자를 동시에 선보이면서 기회를 잡았고 이후 부단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튼튼하게 다졌다.
미국 쪽 활동에만 치중하지 않고 바쁜 와중에도 한국을 오가며 균형을 맞춘 것도 그의 덕목이다. 1999년 ‘쉬리’ 여전사 역할로 그에게 배우로서 성장할 발판을 만들어준 고국에 대한 감사함을 늘 잊지 않고 살았다. ‘세븐데이즈’ ‘하모니’ ‘이웃사람’ 등의 흥행작이 이어졌고 올 연말에는 윤제균 감독 연출로 황정민과 호흡하는 ‘국제시장’이 개봉한다.
김윤진은 ‘로스트’ 오디션 때부터 미국인들이 부르기 힘든 한국 이름을 고집했다. ‘로스트1’의 화면 크레딧에 KIM YUNJIN을 그대로 박았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동양계 스타들 대다수가 성은 그대로 두되 이름은 영어식이나 이니셜 약어로 바꾼 것과 대조적이다. 요즘 대한민국 영어 학원에서조차 토종 한국 아이들끼리 마이클, 톰, 사라, 제니퍼로 통하는 현실이 창피할 따름이다.
덧붙여 한 가지. 김윤진은 자기 이름을 윤 킴은 말할 것도 없이 언진, 은진, 운진 등으로 잘못 발음하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김윤진으로 바로잡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가능했던 건 ‘로스트’가 회를 거듭할수록 전세계 미국팬들을 열광시켰고 무명의 한국 배우 김윤진의 주가도 덩달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덕분이다. 세계 유수 언론들이 김윤진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일도 잦아졌다. 이제 그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이상하게 부르는 서양 기자들에게는 날카로운 한 마디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뷰 신청을 한 배우의 이름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 오셔야죠.”
그런 김윤진이 이번 '국제시장'을 통해서는 우리 시대 영원한 아버지 덕수(황정민 분)의 현모양처 영자 역으로 등장해 구수한 사투리 연기까지 선보인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이자, 며느리,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를 평생 지켜온 영자는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을 전할 게 틀림없다. 세계 어디서나 김.윤.진. 을 고집한 배우의 연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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