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찍으면서 엄청 자존심 상하고 외로웠죠. 왕이 제 침소에 올 생각은 안 하고 매일 밤 궁녀들과만 어울리잖아요.(웃음) 만약 현실이라면? 어휴 상상도 하기 싫죠.”
영화 ‘상의원’ 언론배급 시사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에서 만난 여주인공 박신혜(24)는 당차고 유쾌했다. SBS 드라마 ‘피노키오’가 벌써 A, B팀으로 전투 촬영중이라 하루 두 세 시간 쪽잠을 잔다는데도 1990년생 답게 피부가 뽀얬다.

“상의원 시나리오 받고 너무 끌렸어요. 궁중 의상을 둘러싼 두 남자의 대결도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예쁜 한복을 원 없이 입어볼 수 있잖아요. 한석규 선배님과 고수 오빠가 경쟁적으로 만드는 우아한 한복을 보며 얼마나 눈이 호강했는지 몰라요.”
박신혜는 ‘상의원’에서 비운의 중전이다. 열등감과 콤플렉스 가득한 남편(유연석)에게 사랑받지 못 하고 늘 그의 주위에 머물러야 하는 쓸쓸한 캐릭터. 극중 신분을 뛰어넘는 금기의 사랑도 경험하고 왕에게 한풀이하듯 애증을 토로하는 절절한 장면도 꽤나 먹먹하게 다가왔다.
박신혜는 “후반부 공진(고수)이 목숨 걸고 제작한 한복을 입고 연회에 나타나는데 임팩트 있는 그 장면에 매료돼 이 영화를 선택했어요. 우아한 복식도 끌렸지만 한 많은 중전이 그 옷을 입고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인복이 좀 많은 편”이라고 소개한 박신혜는 탁자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뒤 “작품하면서 처음 만난 한석규 선배님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고 고수, 유연석 오빠에게도 연기자가 가야 할 험난한 길에 대해 많이 묻고 소중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며 진지하게 답했다.
‘상속자’ ‘피노키오’처럼 비슷한 또래들과 일할 때는 경쾌한 팀워크가 장점인데 비해 이번 ‘상의원’은 좋은 선배들에게 고액 과외 받는 기분으로 연기에 임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눈물 연기가 일품인 여배우 중 한 명인데 지금껏 티어스틱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다는 말도 곁들였다. 슬픈 감정을 최대한 끌어낸 뒤 한 두 테이크 만에 원하는 화면과 감정 연기를 소화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딱히 어떤 슬픈 생각에 꽂히는 건 아닌데”라고 말문을 연 그는 “그때그때마다 제가 맡은 인물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나 애처로움을 떠올리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고 답했다.
“데뷔 초 우는 장면을 수십 번 촬영한 적도 있어요. 연기자 입장에선 되게 힘들고 감정도 금세 고갈되거든요. 나중에 보면 거의 맨 처음 찍었던 장면을 쓰시던데 그럴 땐 ‘아니 이걸 쓰실 거면서 왜 그렇게 많이 찍으신 걸까’ 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어요.(웃음)”
영화계에서 톱클래스에 안착한 한효주 턱밑까지 도달했다는 말에 함박웃음을 터뜨린 박신혜는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겠다. 많은 분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는 오래가는 연기자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20대답게 연애 얘기가 나오자 가장 동공이 커졌다. 유명인이라 평범한 연애는 힘들지만, 굳이 마음의 문을 닫고 싶진 않다고 했다. 가능하면 다양한 남자를 여럿 만나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유도 질문에는 “안 그래도 몰래 몰래 만날 생각”이라며 조크로 대응하는 순발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부모님이 강동구에서 양대창집을 하세요. 저도 그 일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요. 촬영 없는 날은 가끔 가게에 가서 서빙도 도와요. 남자친구 생기면 가장 먼저 저희 양대창집에 데리고 와 부모님께 보여드릴 거예요. 혹시 아빠가 싫어하시려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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