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는 과정’ 김상진, SK 마운드 키운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4.12.14 10: 30

“이제 야구를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앞으로 다듬어가야 할 게 많은 원석 아니겠는가”
지난 SK의 가고시마 마무리훈련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기대주는 김정빈(20)이었다. 조나단 허스트 투수 인스트럭터가 주목한 선수이자, 선배 야수들의 칭찬도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상진(44) SK 투수코치에 물었다. 대개 이런 경우 선수들의 잠재력을 극찬하는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빙그레 웃으며 확답을 내놓지 않던 김상진 코치는 이내 다른 대답을 내놨다. 향후 SK 마운드를 보는 김 코치의 모든 생각이 이 대답에 담겨져 있었다.
김용희 감독의 부임과 함께 1군 투수코치로 승격한 김 코치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지도자다. 필연적으로 ‘결과’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프로의 세계지만 가치관은 흔들림이 없다. 김 코치는 김정빈에 대해서도 “과정이라는 게 있다. 가진 것이 많은 투수지만 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2~3년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충실하게 밟을 필요가 있다”라며 신중한 반응을 내놨다. 이는 SK의 젊은 투수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다.

김 코치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데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결과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다. 과정이 아무리 나빠도 그저 경기에서 이기면 그 잘못이 다 묻히는 야구 문화 속에서 컸다”라고 떠올린다. 그러다보니 지도자들은 지도자대로, 선수들은 선수대로 결과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부실하다보면 잠깐의 결과는 금세 사라진다. 야구를 하루 이틀하고 말 선수들이 아닌 만큼 그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올해 1군에 데뷔한 한 투수를 예로 든 김 코치는 “좀 더 2군에서 다듬었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1군에 올라갔다. 여건욱이나 문광은과 같은 선수들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은 기술적인 부분이나 구종 추가의 과정이 이어질 수는 있지만 이 선수는 달랐다”라고 설명했다. 김 코치의 말대로 아직 준비가 덜 됐던 이 선수는 1군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다. 김 코치는 “1군에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기대를 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못하면 선수 스스로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부수적인 부작용도 설명했다.
김 코치 스스로의 경험과 지도 철학이 녹아있는 대목이다. 프로 통산 359경기에서 122승을 거두며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한 김 코치지만 어렸을 때는 부침이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회상이다. 스스로도 결과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가끔 과정을 소홀히 할 때도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퓨처스팀(2군)에서 투수코치를 할 때도 그 과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록 빛을 보는 시기가 1~2년 정도 늦어질 수는 있어도 철저히 준비하면 더 오래 빛을 볼 수 있다는 게 김 코치의 생각이다.
이런 김 코치의 지도 철학은 김용희 감독의 생각과도 부합한다. 또한 팀 마운드 사정을 고려했을 때 더 의미가 빛날 수 있다. SK는 왕조 시대를 이끌었던 투수들 중 상당수가 팀을 떠났거나 부상으로 한 차례 이상씩 고전했다. 반대로 이들의 뒤를 이을 투수들이 좀처럼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군 선수들의 이탈 때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었지만 준비가 덜 된 이들은 롱런의 기반을 닦는 데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어쩌면 앞으로가 SK로서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의 드래프트 성과로 팜에는 젊고 유망한 투수들이 제법 모인 SK다. 이들을 잘 키워내야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볼 수 있다. 김 코치는 “잘 나갈 때 SK는 투수들의 팀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투수들의 성적이 나지 않았고 전체적인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라고 냉정하게 현실을 짚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선수들을 다그치지는 않겠다는 게 김 코치의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다. 이런 지도 철학 속에 SK의 미래 마운드도 점차 살이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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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코치로부터 훈련 내용을 전달받고 있는 SK 투수들. SK 와이번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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