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윤제균, 아버지 장례를 집에서 치러야 했던 사연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2.14 07: 56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올 겨울 블록버스터 영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고인이 된 아버지와의 애틋한 사연 한 토막을 공개했다. 고려대 상대 2학년 시절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만든 영화가 바로 ‘국제시장’이라는 설명이었다.
윤제균 감독은 “어릴 때 부산에서 사립 초등학교를 다녔을 만큼 집안 형편이 좋았지만 아버지가 은퇴한 뒤부터 시련이 찾아왔다”고 했다. 불행은 어깨동무 하고 온다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는데 “아버지가 취미로 시작한 주식이 집을 망가뜨린 원인이었다”며 짧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가 지금도 주식이라면 손을 벌벌 떠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도 처음엔 그저 퇴직 후 소일거리와 용돈이나 벌어보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나 누군가 대박 났다더라 같은 소문이 화근이 됐을 것이다. 투자금은 물타기를 위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결국 오래 가지 않아 퇴직금 뿐 아니라 미수금까지 생기며 집안 기둥이 하나 둘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자책과 원망, 가족에 대한 죄스러움이 한꺼번에 겹치며 화병이 생긴 아버지는 끝내 몸져누웠고 암 진단을 받은 뒤 얼마 안 돼 눈을 감았다. 아들이 고려대에 합격해 덩실덩실 춤을 춘지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윤 감독은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며 “병원에서 돌아가셨지만 집에 빚이 너무 많아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 아무 것도 해드릴 수 없는 자식의 무능과 무력감, 비정한 현실이 너무 밉고 야속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친척들과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고 그때 윤 감독은 인생의 제대로 된 쓴맛과 좌절감을 처음 맛보게 된다. 아버지가 잘 나갈 때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많은 이들이 초상집에 발길을 끊은 것이다.
 “저는 아직도 제 결혼식에 온 하객 얼굴은 잘 기억 못하지만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저희 집을 찾아주셨던 조문객들의 표정과 옷차림, 심지어 말투까지 또렷하게 기억나요. 부의금 대신 커다란 양초 몇 개를 가져오신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의 겸연쩍어 하는 표정과 두툼한 손, 이럴수록 정신 바짝 챙기고 어머니 잘 모셔야 된다는 동네 어르신들의 위로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어렵게 장례를 마치고 상경한 윤 감독은 돈을 벌고 출세해야 사람대접 받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서슬 퍼런 현실을 깨닫고 졸업 후 당시 연봉이 가장 센 대기업 광고회사에 들어가 AE로 일했다. 스무 살 때부터 사귄 캠퍼스 커플 여친과도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사랑으로만 화촉을 밝힌 결혼 생활은 달콤했지만 반지하 탈출은 쉽지 않았다.
“3년 넘게 10평 반지하에서 살았어요, 그래도 착한 아내는 불평 한 마디 안 했죠. 여름이면 장판 밑에 신문지를 넣어두어야 할 만큼 습기가 올라왔고 벽지에도 곰팡이가 피었지만 그래도 행복했어요. 애들한테는 곰팡이 냄새 맡게 해주지 말자며 악착같이 월급을 모았고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너무 감격스러워 이사 첫날 아내와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깨달았죠.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에게도 IMF 칼바람은 비껴가지 않았다. 구조조정에 떠밀려 회사를 나온 그는 오래 전부터 꿈이었던 시나리오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고 처녀작 ‘신혼여행’으로 데뷔하게 됐다. ‘두사부일체’ ‘낭만자객’ ‘색즉시공’ 등 남들이 안 하거나 꺼리는 장르로 대박을 기록했고 부와 명성을 손에 쥐는 듯했다.
JK필름을 차려 한때 스무 편이 넘는 프로젝트를 돌렸지만 그중 절반 이상은 엎어졌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곱절 이상 받아야 했다. ‘스파이’ 이명세 감독 교체는 그의 영화 인생 중 최고 시련이었고 위기였다. 그는 “돈을 잃고 영화가 망하는 건 회복 가능하지만 사람을 잃는 것만큼 상실감이 큰 건 없는 것 같다”며 “제 영화에 온기를 담으려고 애쓰는 건 결국 인생에서 사랑과 휴머니즘 보다 더 가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벌써부터 온라인에선 ‘국제시장’을 놓고 좌파 영화다, 우파다 얘기가 많다고 해요. 그럴수록 차분해지려고 합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일부러 정치색을 뺐고 누선을 자극하기 위한 인물 클로즈업이나 줌인도 처음으로 자제했어요. 저희 아버지 뿐 아니라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이 땅의 모든 애처로운 부모님을 위해. 제 머릿속엔 오직 그것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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