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박은 확실히 드라마 속 찬바람만 날리는 아들 차강재와 달랐다.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듯 언뜻 언뜻 ‘멍 때리는’ 표정과 수줍은 미소를 오가는 표정이 웃음을 줬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속마음을 전혀 숨길 줄 모르는 순수하고 솔직한 모습이 색다른 인상을 남겼다.
얼핏 이름만 들으면 해외 교포 같은 이름이다. 존박, 로이킴, 줄리엔강 등 이름과 성의 순서를 바꿔 부르는 해외파 연예인이 많은 탓이다. 그러나 윤박은 “성이 윤이고 이름이 박”이라고 또박또박 정직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 웃음을 줬다.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윤박은 둘째 아들 차강재 역을 맡았다. 차강재는 냉정하고 지적인 의사. 야심가인 그는 병원장의 딸 권효진(손담비 분)과 정략결혼을 하고, 처갓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등 자신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 뿐만 아니라 유독 차갑고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차순봉 씨네 세 남매 중에서도 집안에 긴장과 갈등을 가장 많이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 배우 윤박으로서는 비중이 큰 이번 캐릭터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윤박은 드라마 초반 마음고생이 있었던 듯 매우 진지한 얼굴로 “부담감이 심했다”고 했다.
“신인인데 큰 역할을 맡아서 부담감이 심했어요.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어떻게 녹아들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컸죠. 잘 해야 되겠다는 걱정이요. 그런 것들이 섞이다 보니까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저에게 힘든 게 컸어요. 연기를 자신감 있게 해야 하는데 초반에 많이 흔들렸던 게 있어요. 그래서 조금 불안해 보이신 것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많이 극복했어요.”

드라마에서 극 중 차강재처럼 주요한 배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어쩌면 초반에는 배역의 무게로 인해 그간 배워왔고,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연기조차 쉽지 않게만 느껴졌다.
“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큰 역할을 맡다보니 대사도 많고, 만나야할 인물도 많고, 신경 써야할 부분이 많으니 오히려 배운 걸 놓치고 가는 게 많았어요. 지적도 많이 받고, 충고도 많이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알고 있었던 것을 아무것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너무 치여서. 많이 힘들지만 앞으로 배우로서의 삶에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재밌게 연기를 하고 있어요.”
차강재는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가장 마음을 알 수 없는 차가운 인물이다. 아버지 뿐 아니라 아내에게도 그다지 좋은 남편은 못 된다. 연기를 하는 윤박 스스로도 차강재를 이해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던 듯 했다.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 ‘차강재 쓰레기’라는 표현을 써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그에게 어떤 마음으로 그 같이 표현했는지 물었다.
“사실 쓰고 나서 지웠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저는 강재의 입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어서 연기를 한 건데 TV로 볼 때는 나쁘게 그려져서 그렇게 표현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내 연기를 내가 욕보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를 하는 제가 쓰레기라고 하면 강재는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요. 이유가 있어서 아버지에게 건물을 달라고 한 건데 나조차 강재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지웠어요.”
엉뚱해 보이기도 하고 즉흥적여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윤박이 이해하고 있는 차강재는 어떤 인물일까.
“일단 이 아이가 원래 그런 아이는 아닌 것 같아요.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더 벽을 치고 행동하는 그런 게 있잖아요. 어떤 극한 상황에 달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반대로 행동하고 과장도 되는 거죠. 그렇게 방어하며 살다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거 같고요. 또 강재는 집안이 잘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원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돈으로 성공을 해야겠다는 집착이 생기고, 성공을 하려다 보니 그런 집에 들어가고 아버지와 마찰이 생겼죠.”
인간 윤박은 차강재와 매우 다르다. 절친한 동생인 배우 최우식은 그를 두고 “너무 착해서 걱정이다”라고 고민할 정도. 그 때문일까. 윤박은 차강재 역을 표현하는 것이 “나와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했다.
“야망에 차 있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해야 하고요. ‘거북목’도 아니어야 하죠. 정말 올바른 사람이니까요. 저를 ‘스마트’하게 고쳐나가는 게 어려웠어요. 화술이라던지 윤박이 갖고 있는 습관을 뜯어내는 것들, 외양을 고치는 게 힘들었어요.”

차강재라는 역은 윤박에게 어려운 시작을 느끼게 한 만큼 보람도 큰 배역이다. 무엇보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는 극 중 불효자라 어른들에게 욕을 먹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반찬을 더 주신다.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라마 현장에서는 나이 많은 선배들부터 비슷한 또래의 배우들과 연기를 한다. 윤박은 부담감보다는 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현장이 참 재밌어요. 영화도 그렇지만 연극은 팀의 분위기가 좋으면 무대에서도 보여요. ‘저 팀 즐겁게 했구나.’ 이런 게 느껴지죠. ‘가족끼리 왜 이래’도 보시는 그대로에요. 쟁쟁한 선생님들이 현장에서건 개인적으로건 두루두루 잘 챙겨주세요. 그래서 어린 배우들도 덜 위축되고 잘 따라가게 되고, 경계가 허물어진 거 같아요.”
특별히 잘해주는 선배가 있느냐고 묻자, 조금 고민하다 “유동근 선배님”이라고 답했다. 아버지 역이기도 하고, 같이 붙는 신이 많아서 가르침을 많이 받고 있단다. 유동근은 대기실에서 후배들에게 연기 수업을 해줄 정도로 열정적이고 자상한 선배다.
“유동근 선배님이 ‘잘하고 있다’고, ‘강재 물올랐다’고 그런 칭찬을 해주셨어요. 뿌듯한데 거기에 속아서 ‘나 잘하고 있으니까 이대로만 해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될까봐 두렵기도 해요. 선생님이 말해주셨더라도 예전에 비해 잘하고 있다는 말씀이지, 강재로 온전히 잘하고 있기 때문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요. 칭찬 받으면 기분은 좋고 감사하지만, 더 좋은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상대역인 손담비와는 매우 편안한 사이다.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며 대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 두 사람은 촬영 순서가 아니어도 함께 끊임없이 대본을 맞춰보며 연습 한다. 솔직한 윤박은 “둘 다 연기 욕심이 강하고, 아직은 서툰 부분도 있지만 열심히 하는 점이 잘 맞는다”고 했다. 삼남매 김현주-박형식과는 정말 남매처럼 지내고 있다. 특히 누나가 없는 그에게 김현주는 친누나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진짜 누나 같아서 인사를 빼먹을 때도 있다고.
사실 윤박은 반전이 가득한 남자다. 까칠해 보이는 극 중 배역과 달리 어떤 질문이든 솔직하게 대답하는 허당 '순수남'이다. 중학교 때부터 연기자를 꿈꿨지만,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탄 경력이 있어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까도, 또 새로운 면이 나오는 양파 같은 매력의 윤박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배역 차강재를 사랑해 달라고 시청자들에 당부했다.
“보실 때는 즐겁게 웃다가 같이 웃고 화내고 열 받다가도 강재라는 인물을 그냥 마냥 미워하시지 만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친구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헤아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드라마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계속해서 많은 사랑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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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