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14] ‘고개 숙인’ 갑의 횡포와 ‘뚜렷해진’ 을의 반격, 변화된 소비자 트렌드
OSEN 이우찬 기자
발행 2014.12.17 07: 58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대응했어야 한다.”
대한항공의 ‘갑의 횡포’가 고개를 숙였다.
변화된 소비자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 소비자들이 외면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진정성은 결여됐고 온라인 시대에 오프라인 사고방식에 젖어 주먹구구로 대응했다. 어느새 을의 위치에 있던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며 대한항공을 압박하고 있다.

▲대한항공 ‘땅콩회항’에 없고 현대캐피탈 ‘사과회항’에 있는 것…신속성
한쪽은 ‘땅콩회항’으로 추락 직전에 몰렸고, 다른 한쪽은 ‘사과회황’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대한항공은 소비자에게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른바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부사장. 조 전 부사장은 봉지 째 서비스 받은 마카다미아에 대한 불만을 품었고 공적인 운송수단인 비행기를 사적으로 회귀시켰다. 이후 조 전 부사장과 대한항공은 승무원뿐만 아니라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에게 진심어린, 신속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회유와 압박만 있었다.
지난 7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땅콩회항’ 사건. 현지시간 5일 벌어진 사건은 7일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여론은 들끓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7일 하루를 통째로 날렸고 8일에도 오후 9시가 넘어서야 ‘주어가 빠진’ 반쪽짜리 사과문을 발표하는데 그쳤다. 사과를 할 수 있었던 초기 이틀의 시간을 대한항공은 버렸다. 소비자들은 분노했다.
한때 위기에 처했던 현대캐피탈은 이른바 ‘사과회항’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2011년 175만 명의 고객 정보가 해킹당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은 해외 출장 중이었지만 즉시 귀국해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했다. 일련의 대책도 발표했다. 고객이 안심하는데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대응은 적극적이고 신속했다.
▲주어 빠진 사과문…‘진정성’이 없다
이미 이틀의 시간을 날린 대한항공. 8일 오후 늦게 내놓은 사과문에는 사과의 주체가 빠졌다. 사건의 전면에서 사과를 했어야 할 조 전 부사장이 쏙 빠졌다. 또 “조 부사장의 문제제기는 당연한 일이다”라며 사과문에서 당시 ‘땅콩회항’을 일으킨 조 전 부사장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급급했다.
뒤늦게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고개를 숙였고 조 전 부사장도 국토부 조사에 출석해 고개를 숙였지만 때를 놓쳤다. 더욱이 대한항공의 일부 승객에 대한 회유와 사무장에 대한 압박 등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사과의 진정성은 소멸했다. 16일 주요 일간지 광고란에 실린 사과문에서도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잘못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전미영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교수는 “(대한항공이) 진정성 있고 솔직하게 대응을 했어야했다.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고 솔직히 사과했을 경우 분노는 사그라졌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항공은) 소비자 대응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똑똑해진 소비자…‘증거’를 분석한다
똑똑해진 소비자 앞에 대한항공의 ‘갑의 횡포’는 점차 무력해졌다. 소비자는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을 판단한다.
시기를 놓친, 진정성이 결여된 대한항공의 위기대응. 소비자는 이미 꿰뚫고 있었다. 9일 오후 조 전 부사장의 퇴진이 알려진 가운데 ‘반쪽사퇴’ 논란이 불거졌다. 부사장직에서 물러나도 등기 이사직뿐만 아니라 계열사 3곳의 대표직을 유지해 ‘꼼수사퇴’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대한항공은 또 다시 소비자를 기만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보수집능력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기만에 속지 않았고 분노 또한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전미영 교수는 “소비자들이 믿지 않고 의심을 한다. 스스로 수사를 하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상황을 맞춰본다. 기업이 진정성 없는 행동을 하니까 그렇다. 의심을 전제로 정보력을 동원해서 사건을 파헤치고 정보를 공유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변화된 소비트렌드를 분석했다.
올 한해 대한항공처럼 소비자 트렌드를 읽지 못한 채 대응에 실패한 사례는 많다.
현대자동차는 싼타페 일부 모델에 대한 연비 배상 문제와 관련해 소비자의 눈치를 살피며 시간을 질질 끌다 결국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배상액 최대 40만 원과 관련해서는 미국 소비자와 한국 소비자를 차별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이른바 ‘남양유업 사태’. 남양유업의 소비자 대응도 실패했다. 남양유업도 늑장 사과 등으로 진정성을 보이지 못했다. 문제가 된 영업직원의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퍼졌지만 남양유업은 온라인 위기대응에 실패했다.
전미영 교수는 “기업이 솔직하게 대응하면 좋을 것이다. 기업에 위기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 처한 상황을 소비자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면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위로나 격려를 해줄 수도 있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포털 ‘다음’ 아고라에는 17일 오전 현재 ‘땅콩회항 승무원들에게 대한항공이 보복징계 하는지 지켜봅시다’, ‘대한항공 불매합시다’ 등의 청원이 올라와 있다. ‘땅콩회항‘을 패러디한 만화도 나와 있다. 모두 ‘을의 반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소비자가 직접 나서 갑의 횡포에 맞선 형국이다. 
남양유업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시가총액만 8000억 원이 넘었다. 하지만 지난 15일 기준 시가총액은 4400억 원대. 갑의 횡포의 결말은 어쩌면 이보다 더 쓸쓸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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