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16일 롯데시네마 잠실에서 영화 ‘기술자들’(김홍선 감독)을 보며 못내 아쉬웠던 건 이 영화가 같은 길을 걸었던 많은 선배 케이퍼 무비들에게 적잖은 빚을 지게 됐다는 점이었다.
밧줄로 결박 당한 사업가가 냉혈한 조폭 두목 김영철에게 참혹한 최후를 맞는 장면에선 느와르 ‘달콤한 인생’이 떠올랐고, 김우빈이 헤드폰을 끼고 금고 다이얼을 돌릴 때는 ‘도둑들’의 레전드급 금고털이범 김혜수가 연상됐다. 이뿐만 아니다. 중간 중간 ‘어디서 봤 더라’ 싶은 익숙한 장면과 설정이 데자뷔처럼 여러 번 반복돼 지나갔다.
물론 ‘기술자들’의 독창성이 빛을 발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김우빈 일당이 동북아 최대 물류기지 인천세관에 보관된 1400억원을 빼돌리는 수법과 여기에 동원된 아이디어는 제법 신선하고 기발했다. 하지만 대중을 사로잡는 월등한 창작물로 인정받기 위해선 앞선 영화들의 시행착오는 물론 그 영화들이 거뒀던 성취까지 모조리 뛰어넘겠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했어야 하지만 의욕이 앞섰던 ‘기술자들’은 이 지점에서 평균점수를 조금 까먹었다는 느낌이다.

특히 1400억을 거머쥔 김우빈이 도피처로 아부다비를 찾는 후반부 설정은 개연성도 부족할뿐더러 서사 면에서도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다. 그가 왜 하필 아부다비를 택했고, 그곳에서 큐레이터로 성공한 조윤희와의 재회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와 닿지 않았다.
호텔 로비에 소중하게 전시된 자신의 목걸이와 대형 초상화를 발견한 조윤희는 감격스러워하고 그런 그녀를 뒤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며 흐뭇해하는 김우빈의 투샷은 멋진 CF의 한 장면 같았을 뿐 영화적으로는 별다른 감흥을 빚어내지 못했다.
크게 한 탕 벌인 남자의 로망이 아부다비 같은 중동에서 석유 재벌 부럽지 않게 럭셔리 라이프를 즐긴다는 설정일 텐데 이에 대한 복선이나 암시, 지난 줄거리가 전혀 없다보니 막상 6성급 호텔과 이국적인 풍광이 나와도 관객에게 황홀감이나 쾌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엔딩을 장식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푸누 경기장 장면이나 ‘도둑들’에서 다이아몬드를 가로챈 전지현의 외국 수영장 망중한 같은 짜릿한 시각적 쾌감과 임팩트를 제대로 탑재하지 못한 것이다.
아부다비와 관련해 굳이 인과관계를 찾자면 ‘기술자들’의 제작자 부친이 두바이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해외 로케 장소로 네트워크가 있는 중동이 선택된 게 아닐까 싶은 정도다. ‘기술자들’의 협찬사로 참여한 한 중동 항공사는 금빛 로고가 새겨진 비행기 동체 뿐 아니라 김영철이 보는 신문 광고에까지 큼지막하게 등장해 PPL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한항공을 컨택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일까 싶은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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