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선수 잔혹사를 끊기 위한 SK의 행보는 신중에 신중이었다. 골자는 시선 전환이다. 메이저리그(MLB) 경력보다는 직접 본 구위와 적응력, 그리고 인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미 트래비스 밴와트(28)에서 한 차례 성공을 거둔 SK는 이 사례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시 메릴 켈리(26) 카드를 집어 들었다.
SK는 18일 그간 소문이 무성했던 켈리와의 계약 소식을 알렸다. 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등 총액 35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켈리는 올해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트리플A팀인 더럼 불스에서 9승4패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했다. 28경기 중 선발 등판은 15경기였고 양쪽에도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며 SK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봉 및 바이아웃 금액도 비싸지 않아 ‘저비용 고효율’ 외국인 선수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MLB 경력이 기본이 된 최근 외국인 선수 시장에서 켈리의 경력은 초라할 수도 있다. 탬파베이의 유망주 출신이라 MLB 데뷔가 더딘 감은 있었지만 어쨌든 MLB 경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은근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김상진 투수코치가 켈리의 선발 등판을 두 번이나 지켜보며 합격점을 내렸다. 구위는 물론 인성까지 꼼꼼하게 체크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경력은 짧지만 켈리는 한국프로야구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건을 두루 갖췄다. 우선 제구다. 올해 트리플A에서 108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은 37개에 그쳤다. 켈리의 스카우팅 리포트를 보면 제구가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이 있다는 평가를 더러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좌타자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이 좋고 커브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다는 것도 SK 현장 실무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구에만 의존하는 ‘얌전한’ 스타일은 아니다. 188㎝의 비교적 큰 키에서 나오는 타점 높은 직구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직구 평균 구속은 140㎞ 중반대지만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구속을 끌어올릴 수 있다. SK가 8월 켈리를 지켜볼 당시 최고 구속은 152㎞까지 나왔다. 투구폼도 다소 까다로운 편이다. 조조 레이예스의 경우는 “투구폼이 너무 부드럽고 예뻐서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켈리는 팔 스윙이 다소 독특해 타자들이 적응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밴와트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으며 입단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밴와트 또한 입단 당시 MLB 경력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켈리와 마찬가지로 트리플A 무대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밴와트는 SK 입단 전까지 트리플A 16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가 5승2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2할2푼4리,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은 1.19로 뛰어난 수준이었다. 전년도 트리플A 성적(10승5패 평균자책점 4.60, 피안타율 2할8푼, WHIP 1.52)보다 향상되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켈리도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인성적인 측면에서도 밴와트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밴와트는 시끄럽게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차분한 성격이다. 켈리 역시 마운드에서 침착함이 돋보이는 스타일이다. 웬만한 일에는 동요하는 법이 없었다는 게 그를 직접 지켜본 SK 실무진의 평가다. 미국 현지에서 직접 켈리와 면담한 민경삼 SK 단장은 “사실 기량적인 측면보다 인성에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아주 스마트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역시 밴와트와 흡사한 구석이 있다. 이쯤 되면 SK가 왜 켈리에 ‘제2의 밴와트’를 기대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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