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판타지를 봐왔는지도 모른다. 옥순봉 아래 평화로운 시골집에서 큰 고민 없이 삼시세끼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만을 궁리하는 삶은 (‘꽃보다 할배, 누나, 청춘’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쉼에 대한 현대인들의 욕구를 자극한다.
지난 19일 휴식기를 맞은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는 복잡한 일상에 지친 ‘미생’ 시대 도시인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킨, 일종의 ‘힐링’ 예능이었다.
‘요리왕’이란 별명이 붙은 이서진은 물론 첫 방송부터 특유의 툴툴거림으로 웃음을 줬다. 별다른 지시 없이 삼시세끼 죽어라 음식만 만들어야 하는 시스템에 “이 프로그램 분명히 망한다”고 자신했던 그는 이내 ‘빙구’ 옥택연과 함께 최선을 다해 정선 생활을 이어갔다. 역시나 읍내에 나가는 것을 즐기는 어쩔 수 없는 ‘도시남자’였지만, 텃밭에서 재료를 구해 이것저것 음식을 시도해 보는 이서진의 모습에서는 분명 즐거움이 묻어났다.

이서진과 옥택연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음식은 약 30끼 정도. 샐러드나 구이처럼 간단한 음식부터 시작해 튀김과 김장김치, 만두에 인절미까지 후반에는 다소 고난이도의 음식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밍키나 잭슨, 닭그룹의 마틸다, 엘리자베스, 이웃집 고양이 멀랜다 등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의 친근하고 귀여운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얼핏 봐도 살림꾼의 자질이 충분한 이서진은 동물들의 집을 직접 만들어주는 정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철물점집 아들 동식이의 도움을 받아 함께 만든 잭슨의 최첨단 집은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삼시세끼’의 재미를 극대화 시킨 것은 적절한 게스트들의 등장이었다. ‘삼시세끼’에는 첫 방송과 마지막 방송에 함께 했던 윤여정-최화정부터 백일섭, 신구, 김지호, 김광규, 류승수, 고아라, 손호준, 최지우, 이순재, 김영철, 이승기까지 게스트들이 출연해 이서진-옥택연 콤비와의 조합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게스트들은 이서진과의 친분에 따라 노예가 되기도 했고(김광규, 류승수 등) 모셔야 하는 손님이 되기도 했고(백일섭, 신구, 이순재, 김영철), 설렘의 대상(최지우, 고아라)이 되기도 했다.
나영석 PD는 방송 전 ‘삼시세끼’에 대해 “'꽃보다' 시리즈를 다녀오고 좋아하는 소풍 같은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속일 수 있는 이서진 씨를 데리고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특별히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가볍고 작은 이 예능 프로그램이 매회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는 편집이나 형식 등에서 묻어나는 나영석PD 특유의 예능 감각, 페르소나 이서진과의 ‘케미스트리’를 들 수 있다. 이것이 ‘삼시세끼’가 훨훨 날 수 있도록 만든 날개였다면, 그러나 이를 존재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의 심장이 된 것은 시골 생활을 향한 도시인들의 판타지였다.
멜로 없이, 피곤한 직장인들의 생활을 담은 드라마 ‘미생’이 커다란 지지와 인기를 받는 시대다. 톱스타였던 가수 이효리의 시골 생활을 담은 블로그가 화제를 모으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지인들이 함께 하는 소규모 모임을 장려하는 ‘킨포크’라는 잡지가 유행하고 있다. 삶이 팍팍할 때는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이처럼 작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무엇인가를 원하게 된다. ‘삼시세끼’는 이런 시대에 꼭 어울리는 콘셉트의 트렌디한 예능이었다.
사실 생존이 달려있는 시골에서의 실제 삶은 이서진-옥택연이 살았던 삶보다 더 고될 수 있다. '삼시세끼'의 삶은 모두에게 그저 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손수 만든 식사와 적은 인원의 손님, 귀여운 가축들과 텃밭, 작지만 따뜻한 온돌방 등 옥순봉 집에는 현대인들의 '힐링'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이루는 것이 쉽지 않은 줄 알지만, 한번쯤을 경험해보고 싶은 꿈이다.
이제 '삼시세끼'는 스핀오프 격인 어촌 편을 방송할 예정이다. 농촌만큼 어촌 역시 도시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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