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흔든' 장그래였기에 가능했다. 그 리얼감으로 사랑받은 '미생'의 판타지 결말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20일 오후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 연출 김원석)의 마지막 회(20회)가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서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장그래(임시완)가 오차장(이성민)이 퇴사 후 새로 차린 회사에 입사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마지막을 장식한 요르단 신은 분분한 반응을 얻고 있다. 운동이라고는 마루 걸레질 정도가 전부로보였던 장그래가 갑자기 리암 니슨 같은 거대한 액션을 펼쳤다. 건물에서 건물로 점프를 하고, 차에 치어도 부상 없이 살아났다.

이는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이미 예고된 것이였다.
장그래는 고졸 학력에 외국어 같은 특별한 기술도 없는, 변변치 못한 20대 청년으로만 여겨졌지만 이런 '루저'의 시선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했다. 이 자체가 판타지라면 최고의 판타지다. 최고의 스펙 장백기(강하늘)를 한 순간 부끄럽게 만든 능력자가 장그래였다.
장그래는 최고의 원석으로 갈고 다듬을 수록 빛이 쏟아져나왔다. 바둑을 회사 생활에 맞게 변형시키는 응용력을 보여주며 매회 에피소드를 채웠다. 놀라운 관찰력으로 박과장(김희원) 사건 해결의 일등 공신이 됐고, 어려운 무역용어를 단시간만에 독파하는 암기력으로 선배들을 놀라게 했다. 가라앉는 배에 대해 선배, 임원들이 고민 할 때 "땜질을 하라"는 현답으로 회사를 살려냈다.
엄격한 틀이 존재하는 PT에서 '판을 흔든다'라는 천재적인 개념도 생각했고, 여기에 성실하고 겸손한 자세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계약직 하나를 구하기 위해 회사 동료 선배들이 힘을 함쳐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할리우드 휴먼드라마 속 히어로 같은 모습이다. 사실 슈퍼맨이라면 매회가 더할 나위 없는 슈퍼맨이였다. 하지만 정글같은 회사 속에서 이렇게 원석으로 갈고닦아지는 장그래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힐링을 받아왔을지도 모른다.
바둑을 하다가 대기업 계약직 사원이 되고, 다시 한층 더 프로페셔널해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장그래의 달라진 인생처럼, 드라마 역시 기존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결말을 제시했다는 것에 나름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다. 결말은 한 마디로 장그래의 인생 역전이였고, 미생들이 꿈꾸는 '장그래 외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생'은 장그래(임시완 분)가 프로 입단에 실패한 후, 냉혹한 현실에 던져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원작으로 했다. 지친 직장인들을 담백하게 위로해주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nyc@osen.co.kr
'미생'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