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실시간 차트인가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4.12.24 11: 07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최근 매우 오랜만에 컴백한 한 가수의 팬 커뮤니티. 가수 따라 오랜만에 '팬질'을 재개한 한 팬이 '스밍'을 돌리고 있다고 자랑(?)한다. '스밍'은 요즘 아이돌 팬들이 자기 가수의 음원 순위를 높여주기 위해 밤낮 없이 하는 스트리밍의 줄인 말. 댓글에는 어느 사이트에서 어떻게 해야되는 거냐, 그냥 틀어놓기만 하면 되는 거냐 질문이 쏟아진다.
"B사에서 했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야. 멜론에서 해야지. 다들 멜론으로 가!"
팬들뿐만이 아니다. 가요관계자가 세명 이상 모인 자리에는 반드시 음량을 줄여 틀어놓은 신곡이 흐르게 마련이다. 나 하나 더 튼다고 해서 순위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다. 조금 더 급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스트리밍을 부탁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음원사이트 실시간 차트 때문이다. 1시간에 한번씩 발표하는 음원 순위는 가수와 제작자의 자존심 그 자체. 한 시간에 한 계단이라도 더 높여 보려는 피나는 노력이 이같은 '스밍'으로 나타난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이 실시간 차트는 과연 음악의 소비를 '건강하게' 촉진시키고 있는가. 신곡들이 발표되고, 차트에 이름이 곧바로 뜨고, 이 순위가 한시간마다 뒤집어지는 현 상황은 음원시장을 마치 경마장처럼 느껴지게 한다. 1번마가 2번마를 역전하는 짜릿한 순간, 제작자와 팬들의 희비는 엇갈리고 다음 판을 위해 제작자는 자극적인 홍보에, 팬들은 가열찬 '스밍'에 돌입한다.
가수들의 트윗, 홍보 보도자료, 미공개 영상-사진 오픈 등은 모두 다음 시간대 실시간 차트를 위한 것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소모적인 전쟁에 지치면서도, 매 시간 음원사이트를 눌러볼 수 밖에 없는 신세. 그 뿐인가. 최근에는 매 시간 음원 소비가 주식 그래프처럼 나타나는 서비스까지 나타났다. 음원 소비량이 주식처럼 치솟다가 고꾸라지는 게 확연히 나타나는 것이다.
본인은 죽을 맛이겠지만, 구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꽤 재밌다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관계자들도 예전처럼 하루에 한번만 일일차트가 공개되는 게 그립다고 입을 모으긴 하지만, 정작 이 흥미진진한 실시간 차트가 없어지면 금단 증상이 나타날 게 분명하다.
대중에게도 꽤 재밌는 구경거리다. 유명 가수가 단 한시간만에 차트를 점령하고, 100위권 밖에 있던 곡이 한시간에 30계단씩 역주행하는 광경은 '대중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도 몇번씩 접속하게 되는 사이트가 시종 같은 순위를 보여주고 있다면, 좀 심심하기도 할 것이다.
음원사이트 입장에선 순위를 일부러 안보여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게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길이다. 어찌됐든 고객은 경쟁을 즐기니까, 앞으로 더 기발한 실시간 차트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점점 더 빨라지는 시대, 실시간 경쟁이 도입된 게 음원차트 뿐만인 것도 아니니 이 시대적 현상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기도 하다.
다만, 1등을 찍고도 또 달려야 하는 경주마들이 조금 더 지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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