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원' 이원석 감독 "조선시대 남자들, 귀걸이 했죠"[인터뷰]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12.24 13: 59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 '남자사용설명서'(2013, 이하 남사용)를 본 관객이라면 이원석 감독이란 사람에게 한 번쯤 호기심을 느꼈을 법 하다. 독특한 소재와 배우 오정세의 새로운 활용(?), 여기에 만화적인 상상력이 뒤섞인 영화를 만든 이 감독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런 그의 차기작이 '상의원'(24일 개봉)이란 사실이 알려졌을 때 다시 한 번 놀랄 만 했다. B급 감성의 소유자로 보였던 그가 큰 버젯의 궁중사극을 내놓다니. 다만, 이원석 감독이 영화계에서도 꽤 유명한 패셔니스타란 사실만이 이 두 작품을 관통하는 듯 했다.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에서 펼쳐지는 조선최초 궁중의상극. 하지만 이 감독은 이 영화가 진짜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했다. 질투와 분노, 자유로움과 속박, 갈망과 포기 등 인간이 가진 다양한 이중적 감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어쩌면 이 감독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이 가진 내면의 반영이라고 할 만 하다. 더불어 그가 들려준 영화 속 의상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 '남사용과 '상의원'의 간극이 커 보인다
▲'남사용'이 B급 정서라 생각하지 않는다. 메이저 정서지. 하하. 그런 게(B급 감성) 먹히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상의원'은 잘 될거다, 안 될거다라는 생각은 접고 내가 잘 아는 정서라고 느껴 시작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런 식의 파이팅이 넘쳤다.
- 영화 속 한복 의상과 아이템들은 다 고증이 된 것들인가?
▲실제로 조선시대 남자들이 서로 더 큰 갓을 쓰고 다니려고 해서 갓끼리 부딪히곤 했다더라. 허세스러운 것을 풍자하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옷이 계급을 상징화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대를 비꼬려고도 했다.
'상의원' 시나리오를 받고 조상경 의상실을 찾아갔다.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대강 있었다. 디자니어 알렉산더 맥퀸 같은 옷을 생각했는데, 그 쪽에서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한복에 대해 뭘 얘기하려고 하냐고 물으시더라. 서구의 것이 더 아름답다냐는 얘기냐고. 한복을 만드는 사람들, 공부하는 분들이 어색할 수 것은 뺐다. 한복이란 게 일면 비슷비슷해서 시대를 섞었다. 500년 역사에서 200년을 발췌해 조합한 것이다. 왕비가 입는 옷 같은 것은 이렇게 시대를 섞어 만든 것이다. 한복 연구가 분들에 따르면 정말로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바지가 있었다고 하더라. 승마 할 때 사대부 여인들이 입었던 것을 나중에 기생들이 입었다고. 레이어드 하는 것도 있었고, 속치마를 보이게도 입었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귀걸이도 했다. 장신구 활용이 많았던 것이다. 서양의 것을 가져와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 반대로 공진(고수)이 중전(박신혜)의 옷을 만들기 위해 몸의 치수를 재는 신 같은 것은 상상인데
▲ 맞다. 옛 장인들은 눈썰미로 쟀다고 하더라.
- 영화 속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의상은?
▲아무래도 중전의 대례복. (그 의상은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렇다. 공진이 돌석(한석규)의 영향을 받아서 더 한국적으로, 하얀 색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그리고 왕(유연석)이 처음으로 선보인 옷은 장인 분이 몇 달에 걸쳐 만들었다. 왕의 사냥복 같은 것은 여러 라인과 디테일을 섞은 옷이다. 한복은 그냥 보면 보자기로밖에 안 보이는데 사람이 입으면 확 달라진다. 사람이 입고 테가 나는 옷이다.
- '상의원'의 제작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와 남다른 인연이라고
▲30살 때 영화를 시작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센 학교인데 운 좋게 들어갔다. 내가 웨이팅 리스트에 있었는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안 왔다. 하하. 내가 조직생활을 잘 못하는데 김수진 대표가 나를 수렁에서 건져줬다. 꿈과 희망이 없던 나에게 '너는 꼭 감독을 해봐'라고 응원해줬다. 원래 친한 사이여도 서로 같이 일하면 웬수 되는 경우가 많아 같이 일은 안하려고 했는데, 같이 하게 됐다. 하하. '남사용' 기자시사회 후 김수진 대표가 나를 꼭 안아주셨다. 되게 기분이 좋았다. 이후 이런 저런 책(대본)을 많이 읽다가 '상의원'을 읽고 원래는 안 하려고도 했지만 차차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영화다'라고 생각했다. 읽고 나서 생기는 그 먹먹한 느낌이 좋았다.
- 한석규, 고수, 유연석, 박신혜. 연기파와 대세의 조합. 환상적인 캐스팅이라 할 만하다.
▲캐스팅이 쉽게 됐다. 한석규 선배의 CF 목소리의 듣고 컸는데, 그 분과 함께 한다고 하니 꿈 같았다. 고수는 '초능력자', '고지전'에서 너무 좋았다. 드라마 '황금의 제국'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만났는데 그 당시에 그 캐릭터에 푹 빠져 있더라. 진지하고 분노가 가득했다. 하하. 나중에 보니 8차원 매력덩어리더라. 박신혜는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해 온다. 감독이 현장에서 이랬다 저랬다 바꿔도 적극적으로 임해준다. 멀티캐스팅이라서 스토리라인이 비는 데가 있는데 그걸 자기가 다 채워오더라. 여자로서 중전의 감정선은 이럴 거 같다,며 다 챙겨온거다. 많은 감독들이 박신혜를 칭찬하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 20대에 맹활약한 전도연 씨 같은 분들이 지금 어른이 됐지 않나. 그 바통을 이을 사람으로 항상 박신혜 씨가 거론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유연석은 스테레오 타입의 왕을 자기만의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고자 정말 노력했다. 연구도 정말 많이 했다. 현장에서 '해해해' 거리다가도 슛 들어가면 마치 하이애나처럼 변한다. 한석규 선배에게 밀리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더라. 참 그런 태도가 좋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얘기하고, 자신감 있고, 또 적극적으로 듣는 태도 그게 믿음인 것 같다. 서로서로 믿는 사람들 여럿이 함께 작업하면 그게 좋은 것 같다. 사극을 처음 하면서 각 분야 최고 사람들과 많이 대화할 수 있어 좋았고 그 만큼 많이 배웠다.
- 사극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나?
▲영화는 다 어려운 거 같다. 현대극은 잔재주를 부릴 게 많은데, 사극은 '띵' 하고 모든 것을 다 날로 보여준다. 숨을 구석이 없다.
- '상의원'의 어떤 부분에 끌렸나?
▲이 얘기를 읽고 좋았던 게 왕, 왕비, 돌석은 다 과거가 있는데 공진만 과거가 없다. 다들 우리가 과거에 연연해서 '이렇게 살아야 돼 저렇게 살아야 돼' 하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남을 짓밟고 이러는 거다. 공진은 그런게 없고 순수하게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돌석과 공진은 모든 사람이 지닌 양면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유로움을 포기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내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과거가 이랬으니 이래야 돼,란 생각. 이런 것 때문에 내 안에 있는 공진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꿈꾸는 게 아닐까.
-본인에게 돌석 같은 컴플렉스가 있다면?
▲삶 자체가 콤플렉스다. 친한 감독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도 질투가 난다. 그래서 자극받아 밤새 (대본을) 쓰기도 했다. 너무 잘 하는 사람들은 지나갈 때 다리도 걸고 싶다.
-좋아하는 감독은?
▲웨스 앤더슨, 스파이크 존즈를 좋아한다. 내가 (영화)학교 다닐 때 학생들의 롤모델이였다. 그들이 진정한 뉴 웨이브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해 볼 생각은 없나?
▲카메라를 정확하게 의식해서 안 된다. 택시 기사 역을 연기 한 적이 있는데 카메라가 뒤에 있었는데 뒤를 보며 연기했다.
-'상의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회환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가장 와닿는 장면은 돌석의 마지막 장면이다. 가장 공감했던 지점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바로 무언가를 느끼기 보단, 덮고 나서 먹먹함이 좋았다. 보시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 '남사용' 흥행이 안 돼 상처도 받았었다고
▲사실 당시 흥행 기대는 많이 안 했는데 시사 반응이 좋아서 '와와' 한 게 있었다. 그런데 안 되니까 고민도 많이 했다. 막상 하고 싶은 영화를 하자고 생각했는데, 잘 안되니까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란 생각도 들고. '상의원'을 하면서도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해야하나 계속 고민이다. 어느 순간 나도 다른 쪽을 고민하게 되더라. 그 때 내 안의 공진과 내 안의 돌석이 부딪히는 거지. '상의원' 속 질투와 분노는 나한테 너무나 공감가는 이야기다. 관객과 어떤 부분에서 소통을 해야하는지, 거기에서 모든 감독은 자기 안의 돌석과 공진과 싸우는 것 같다.
- '남사용'에 뚜렷한 이원석 특유의 색깔이 있다. '상의원'에서 공진이 자신의 마크를 옷에 새기듯, 영화 속에서 이런 이원석의 시그니처가 담긴 장면이라면?
▲달토끼 장면이겠지. 이야기에 누가 안 되면서도 공진의 남다름을 보여주고 싶었다. 공진이 생각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 극 중 공진의 실력을 제일 먼저 알아보는 판수 역 배우 마동석이 큰 웃음을 담당한다
▲마동석은 미국에서 헬스 트레이너할 때 만났다. 그 때 배우가 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잘 될지 몰랐다. 하하. 굉장한 노력파다. 그리고 심성이 착하다. 자기 식구 잘 챙기고. 앞으로 엄청난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예비 관객들에게 한 마디
▲연말에 화려함도 볼거리도 졸은 작품들이 많지만, '상의원'은 그 중 한 해를 뒤돌아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옷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영화다. 열심히 한 해를 살아왔고, 그것을 정리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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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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