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프로에 데뷔한 ‘화석’ 주희정(37, SK)은 어떻게 지금까지 프로농구에서 주축전력으로 뛰고 있을까.
주희정은 지난 22일 LG와의 창원 원정경기 1쿼터 종료 1분 41초를 남기고 김선형과 교대해 코트에 들어섰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900경기에 출전한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KBL이나 창원 LG측은 아무런 기념식도 열지 않았고, 기록달성 사실도 계시하지 않은 채 그대로 경기를 진행해 큰 아쉬움을 남겼다.
프로농구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데뷔 후 5년 안에 소리도 없이 사라진다. 주희정이 단순히 체력관리만 잘해서 1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스타출신이라도 노장이 되고 팀에 필요 없는 존재가 되면 뛸 수 없는 것이 프로의 생리다. 주희정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비결은 끊임없이 자신의 기량을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이다.

프로 초창기만 하더라도 주희정은 스피드만 빠르고 3점슛이 없는 선수였다. 상대 수비수들이 주희정의 외곽슛을 놔주고 다른 선수에게 도움수비를 가는 굴욕적인 장면도 많았다. 1997-1998시즌 주희정의 3점슛 성공률은 19%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주희정은 미친 듯이 3점슛 연습에 매달렸고 꾸준히 슛률이 좋아졌다. 주희정은 4년차였던 2000-2001시즌 3점슛 38.6%를 기록하며 삼성을 프로 첫 통합우승으로 이끌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주희정은 좋은 가드였지만 A급 포인트가드는 아니었다. 그는 2005년 KT&G(KGC의 전신) 이적 후 경기운영과 패스에 눈을 뜨며 비로소 최고선수로 우뚝 섰다. 주희정은 2008-2009시즌 평균 15.1점, 4.8리바운드, 8.3어시스트, 2.3스틸의 괴물 같은 성적을 남기고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KT&G가 7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하지 못했음에도 주희정의 수상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만큼 그가 독보적인 시즌을 보냈다는 뜻이다.
당시 주희정을 지도했던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그 때만 해도 주희정이 투맨게임을 못했다. 그런데 지독하게 연습을 하더니 패스타이밍을 몸에 익혔다. 항상 저녁에 안양체육관에 가면 주희정 혼자 연습을 하고 있었다. 왼손으로 던지는 훅슛 비슷한 레이업슛도 백발백중이었다”고 털어놨다. 주희정은 마퀸 챈들러와 최고의 콤비를 이뤄 KBL에 ‘런앤건 열풍’을 몰고 왔었다.
주희정은 왜 이렇게 만족을 모르고 열심히 하는 것일까. 그는 2009년 김태술과 맞트레이드로 SK로 팀을 옮긴 후에도 개인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놀기 좋아하는 서울팀’이란 SK의 이미지도 주희정 입단 후 달라졌다. 후배들도 주희정을 따라 야간에 체육관을 찾기 시작했다. 만년 하위팀이었던 SK는 2012-2013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지금까지 강호로 군림하고 있다.
유도훈 감독은 “주희정은 어렸을 때 할머니 밑에서 컸다.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큰 선수가 된 후에도 그 절박함을 계속 간직하고 있다. 요즘도 연말이 되면 희정이가 꼭 선물을 보낸다. 주희정은 운동중독이다. 일부러 면담을 하자고 해서 운동을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회고했다.
주희정은 자신의 플레이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위를 바라봤다. 팀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했다. 어려운 숙제를 하나씩 해결하다보니 어느새 900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이다. 주희정이 가진 가장 큰 재능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고 메우려는 그 욕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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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절 주희정 /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