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었다. 아들을 몹시 사랑하는 헬리콥터맘이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긋한 말투와 부드러운 표정 뒤에는 냉정한 전략가가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야기, 그것이 '피노키오'였다.
지난 25일 오후 방송된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극본 박혜련, 연출 조수원) 14회에서는 범조(김영광)의 어머니이자 백화점 회장인 로사(김해숙)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명(이종석)과 범조(김영광)는 백화점 취재를 둘러싸고 갈등했다. 하명은 로사를 탐욕스러운 장사꾼으로 몰아갔고, 범조는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상과 달리 로사는 물의를 일으킨 데 책임을 느낀다며 취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인하(박신혜)는 로사의 친절한 태도에 의구심을 가졌고, 자신의 어머니 차옥(진경)와 로사의 관계를 의심했다. 로사가 수상하기는 하명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하명은 로사의 속내를 알아냈다. 로사는 백화점 절도 사건의 범인을 일부러 용서하지 않았고, 사건이 커져 뉴스에 보도돼 결국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어지길 원했던 것이었다. 하명은 범조에게 추가 주문서를 증거로 내밀었다. 범조는 하명의 주장을 부정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무엇이 잘못되었느냐"는 로사의 반문에 크게 실망했다. 그는 로사의 곁을 떠나 자취를 결심했고, 어머니가 13년 전 화재 사건과 연관이 있음을 감지했다.
그 가운데 폐기물공장 화재 사건이 벌어졌다. 하명과 인하, 범조, 유래(이유비)는 해당 사건이 하명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희생된 13년 전 사건과 유사하다는 데 주목했다. 그들의 친구이자 선량한 경찰 찬수(이주승)가 엉뚱한 희생양으로 내몰린다는 것, 상황을 주도하는 인물이 차옥(진경)이라는 것마저 닮아 있었다. 실은 추악한 진실을 덮으려는 로사의 계략이었고, 기자의 도리를 저버린 차옥의 선택이었다. 하명은 차옥에게 "흐름을 제자리로 돌리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이날 본색을 드러낸 로사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평범한 남자주인공 엄마 역을 맡기에 배우 김해숙의 이름값이 아까웠던 터. 그간 로사의 정체를 궁금해 하던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14회 만에 풀렸다. 또한 조력자처럼 여겨지던 로사가 실은 악인이란 사실은 반전이었다. 로사의 계산된 행동이 뒤늦게 밝혀졌고, 그의 온화한 표정들이 주는 서늘함은 배가 됐다. "점점 기하명이 거슬린다"는 대사로 로사와 하명의 갈등을 짐작케 했다.
이처럼 '피노키오'에는 허투루 등장하는 인물도, 에피소드도 없다. 가면 갈수록 충격적인 진실들이 터져나오는데, 더 놀라운 것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친구'쯤으로 그려지던 찬수 또한 사건의 중심에 서면서 인물들이 사건을 파헤쳐 나갈 동기를 부여했다. 어쭙잖은 반전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해진 판이었다는 것, 그리고 탁월한 이야기꾼에 의해 빠르게 풀어나가고 있다는 것. 이쯤되면 김해숙 뿐만 아니라, 박혜련 작가 역시 '무서운 사람'이었다.
'피노키오'는 매주 수,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
jay@osen.co.kr
'피노키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