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LA(미국 캘리포니아주), 박승현 특파원]구로다 히로키(39)가 7년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로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27일(이하 한국시간) 구로다의 일본복귀 소식이 전해지자 다저스를 취재하는 몇몇 기자들이 구로다를 추억하는 멘션을 올렸다. 누구는 ‘30대가 아닌 20대 중반에 메이저리그에 왔으면 어땠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로다는 개인적으로도 인상적인 선수였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일본 프로야구를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팬으로 말하라고 하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구로다였다. 히로시마 카프.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재정 사정이 가장 약한 쪽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 늘 하위권에 머물던 팀에서 구로다는 단연 빛나는 존재였다.

잠시 기록을 보자. 2000시즌부터다. 2007년까지 8년간 7-13-8-8-7-11-7-7이라는 숫자를 기록했다. 승수가 아니다. 완투경기 숫자다. 두 번이나 두 자릿수 완투경기를 기록했다. 개인 통산으로 보면 일본에서 선발 등판한 244경기 중에 완투가 74경기다. 30.33%다. 1960년대도 아니고 투수들의 분업이 완성된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런 기록을 냈다. 74번의 완투 경기 중 완봉은 14번 기록했다. 미국보다 경기 수가 적은 일본에서도 구로다는 두 번이나 200이닝 이상 시즌을 보냈다.
약한 팀의 에이스. 하지만 등판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구로다의 모습이 좋았다(혹사니 무식한 기용이니 하는 말은 패스. 팬으로 좋아할 순 있는 것이니까).
2008년 LA에 살게 되었을 때 구로다의 피칭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이 때는 좀 다른 관점에서였다.
일본 프로야구의 오늘이 있게 한 쇼리키 도루 전 요미우리신문 사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신인 동경 거인군을 창설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것을 배우되 궁극적으로는 메이저리그를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로다가 2008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기에 앞서 많은 일본 프로야구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와서 성공도 하고 혹은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히 구로다에게 눈길이 갔던 것은 쇼리키의 슬로건이 과언 얼마나 달성됐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선수라고 여겼던 이유도 크다.
우완 투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결코 강속구 투수가 아닌(fangraphs의 집계에 의하면 구로다는 다저스에서 4시즌 동안은 92마일 대의 평균 구속을 보였고 지난 시즌 뉴욕 양키스에서는 평균구속 90.7마일을 기록했다)구로다였지만 그에게는 ‘메이저리그를 넘기 위한’ 무기가 있었다. 제구력과 다양한 구질이다. 커터, 스플리터, 싱커, 슬라이더, 커브가 레퍼토리에 들어 있었다(개인적으로 일본 투수들의 스플리터가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데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이미 2008년 태평양을 건널 때 33세였고 2006년 팔꿈치 수술까지 받은 상태였지만 구로다는 메이저리그 7시즌 동안 자신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남겼다.
메이저리그 3년차인 2010년 11승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매년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했고 양키스로 옮긴 첫 해인 2012시즌에는 16승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 5시즌 동안 196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메이저리그 7시즌 중 6시즌에서 31경기 이상 선발 등판하는 꾸준함을 보여줬다. 메이저리그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동안 6경기 완투, 5경기 완봉승도 대단한 기록이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구로다는 히로시마를 위해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된다.
구로다의 해외 진출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다시피 했던 2006시즌 말 히로시마 팬들은 당시 히로시마 시민구장 외야에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플래카드에는 ‘우리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함께 싸울 것이다. 빛나는 미래의 그날까지 당신이 눈물을 흘리면 우리는 기꺼이 당신의 눈물이 되어 주겠다. 카프의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 라고 적혀 있었다(구로다는 2007년 한 시즌을 더 뛴 뒤 메이저리그로 왔다).
그 구로다가 다시 히로시마 팬들 앞에 선다.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 기원한다.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시즌 중에도 개인 훈련을 열심히 한다. 필드에서 러닝을 아주 중시하는 것도 보통의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다르다. 루틴이 일본 선수들의 그것과 비슷해서 구로다가 다저스에 오기 전 부터 다저스를 취재하고 있는 일본 기자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답변은 역시 커쇼가 구로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도 구로다는 자신의 '일본 야구'를 메이저리그에 알린 셈이다. 알려진 대로 커쇼는 다저스시절 구로다의 캐치 볼 단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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