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미생'이 2014년 하반기 최고의 드라마로 손꼽히며 많은 이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감있게 묘사하며 많은 이로부터 공감을 자아냈던 극중 캐릭터들 역시도 더할 나위 없이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몇몇 캐릭터는 대다수에 쏟아졌던 사랑의 크기와 상응할 정도의 다양한 악플들과 직면했다. 이는 극중 악역을 너무 실감나게 소화했기에 가능했던 일일 터. 특히 종영하는 그 순간까지도 '이유없는' 악역 성대리 역의 태인호는 단연 자타가 공인한 '미생' 속 밉상 1위였다. 방송 전후 엄청난 피드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배우 태인호를 직접 만나,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죽이고 싶다'는 댓글…"기뻤다"

지난 2004년 영화 '하류인생'을 비롯해 '신세계'(2012) '연애의 온도'(2012) 등 최근까지도 몇몇 굵직한 영화의 단역과 조연, 여러 독립영화 주연 등으로 활약했던 그는 '미생'을 통해 제대로 재발견된 '중고 신인'이다. 그렇게 태인호는 '미생' 원인터내셔널 섬유팀 성대리, 한석율(변요한 분)을 괴롭히는 소시오패스 상사로 대중의 뇌리에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하필' 악역으로 기억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었을까.
"살짝 있죠.(웃음) 그런데 그게 좋은 캐릭터고, 나쁜 캐릭터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성대리도 하대리(전석호)나 강대리(오민석)처럼 괴롭힘의 이유가 있었고, 그 속사정이 나중에 밝혀지는 캐릭터면 어떨까를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알다시피 성대리는 마지막까지 초지일관 '나쁜X' 이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냥 회사에 있음직한 이유없이 나쁜 상사'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나중엔 그런 고민도 내려놓고 '그냥 나쁜' 성대리에 몰입했어요."
쏟아졌던 다양한 욕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대리는 '기뻤다'고 했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이런 확실한 피드백은 난생 처음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진 것에 대한 기쁨도 일정부분 차지했다.

"사람들이 알아보는 게 낯설긴 해요. 댓글 보면 '죽이고 싶다'로 시작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들도 봤어요. 기분이요? 좋죠. 반응들이 참 재밌었어요. 직장인들이 한석율에 공감하고 성대리를 향한 각종 욕들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 신기했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해왔던 연기 스펙트럼을 벗어난, 해보지 못했던 역할을 해본 게 가장 행복해요. '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이렇게나 욕을 많이 먹었다는 건 잘 했다는 평가니깐요. 그걸로 충분히 기쁩니다."
◇성대리는 성대리, 태인호는 '태쁘'
태인호가 이렇게까지 격렬한 악플에도 불편함 없이 마음 놓고 기뻐할 수 있었던 건, 성대리를 향한 악플과 달리 배우 태인호는 웹상에서 '태쁘'(태인호+예쁘다)로 불리며 애정을 받았기 때문. 김태희의 유일한 수식어 '태쁘'를 강탈할 기세다.
캐릭터는 밉지만, 배우는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그 중 하나는 곱상한 태인호의 외모와 참 적절하게 매치된 돋보이는 의상 덕분이었다. 슈트는 물론, 셔츠와 조합한 니트와 코트 등은 성대리를 단연 원인터의 '패피'(패션피플)로 만들었다.
"몸이 많이 말랐어요. 그래서 스타일리스트가 여러가지를 입혀보면서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단추 하나의 디테일까지 신경써준 노력 덕분에 그렇게 (패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회사에서 맞춰준 정장 세 벌도 화면 속에서 보기 좋게 드러났던 것 같아요."
그가 성대리와 분리(?)될 수 있던 이유, 또 있다. 바로 현장에서 업데이트되던 비하인드 사진들. 그곳에서 태인호는 변요한과 오붓한 모습을 보여줬고, 마부장(손종학)과 '구타유발자' 콘셉트의 재미난 설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요한이와 사진을 찍을 때는 '오해를 풀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했던 건 맞아요. 사진을 보고 많은 분들이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돌리신 것 같아 뿌듯했죠. 마부장님과는 캐릭터로 너무 욕을 먹길래 다정한 포즈를 포함해 여러장을 찍었는데, 오히려 공개됐던 건 또 '구타유발 포즈'더라고요."

◇악역 어벤저스…마부장+박과장+성대리가 뭉치면?
앞서 언급됐던 자원팀 마부장, 그리고 2회 출연으로 모두를 소름돋게 만들었던 원인터 영업3팀의 박과장(김희원), 그리고 섬유팀의 성대리. 이들 셋은 태인호 스스로가 직접 꼽은 '미생' 속 나쁜 캐릭터 1~3위를 차지했다.
"3위가 박과장님이요. 연기하시는 걸 보고 저도 놀랐어요. 솔직히 '밉다'라기 보다는 '무섭다' 였어요. 저도 소름이 돋았거든요. 2위는 마부장님요. 설명..없어도 아시죠? 안영이(강소라)나 자원팀, 영업팀에 하시는 걸 보면 밉상 맞잖아요. 그래도 1위는 무조건 성대리죠. 마부장님이 하시는 건 뭔가 자기가 하는 게 나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한 모습이거든요. 알면서도, 그냥 하는 거죠. 근데 성대리는 아예 그런 마음 자체가 없어요. 잘못했다는 걸 아예 모르는 거죠. 괜히 '소시오패스' 소리를 듣는 게 아닙니다."
이들 셋으로 원인터 악역 어벤저스로 팀을 꾸린다면? 마부장이 이끌고 박과장과 성대리가 한 팀이라는 설정은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원인터 신입사원 중 누가 이들을 버텨낼 수 있을까. 태인호는 사원 장그래(임시완)을 원했다.
"힘들 것 같진 않아요. 3명이서 서로 으르렁 대진 않을 것 같거든요. 오히려 사원에게 집중 될 것 같아요. '잔혹 3팀' 어떨까요? 여기에 장그래를 데려오면…. 장담컨대 하루 만에 울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악역 라인만 있나? 사촌형 천과장 & '미생' 대리즈
극중 악역 인연 외에도 태인호의 인맥은 또 있다. 바로 사촌지간으로 알려져 큰 화제를 낳았던 천과장(박해준)이다. 두 사람은 캐스팅이 된 후에야 한 작품에 들어갔단 걸 알았다고 했다. '한 번 같이 해보고 싶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
"큰아버지의 아들이라 명절때마다 보는 사이죠. 형한테 먼저 전화가 왔었어요. '너 미생 한다며? 나도 한다'고요. 언제 연극 한 번 같이 해보자고 말했는데 정작 기회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드라마 '미생'으로 만나게 됐어요. 형 연기요? 예전에 공연하는 걸 다 보러 갔었어요. 매력있죠. 정말 매력있는 배우인 것 같아요."
그리고 혈연에 버금가는 막강 원인터 '대리 라인'도 꽤 끈끈하다. 영업3팀 김대리(김대명)를 비롯해 자원팀 하대리, 유대리, 철강팀 강대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최근에도 다 같이 홍대에서 모여서 술을 마셨어요. 석호가 자주 뻗곤 해요. 혼자 막 마시다가 어느 순간 보면 정신을 놓고 있어요.(웃음) 그날은 2명만 모이기로 했다가 급 결성되서 대리라인이 다 모였어요. 앞으로 작품이 끝나도 서로 자주 보고 싶은 그런 인연들이에요."
작품을 하면서 더 존경하게 됐던 이는 누가 뭐래도 원인터 오차장으로 모두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선배 배우 이성민이다. 그는 이성민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고 또 배웠다.

"선배님인데 선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을 주시거든요.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되고, 존경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항상 지나칠 때면 '화이팅'을 외쳐주시고, 하이파이브를 하세요. 본래부터 좋아했는데 '미생'을 하면서 더 좋아졌어요. 대사를 하지 않아도 장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여요.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연기요.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을 얻는 그런 선배님이죠. '미생'을 해서 정말 여러가지로 올 한 해가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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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