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어떤 마법으로 대중을 홀린 걸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12.29 08: 10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국제시장’(윤제균 감독)이 올 겨울 극장가의 A급 태풍으로 떠올랐다. 개봉 첫 주 보다 2주차 주말 관객이 증가하는 스노우볼 효과를 보이며 28일 400만 고지에 안착했다. 이 추세와 분위기라면 천만 돌파는 물론이고 감독의 전작 ‘해운대’(1145만)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텐트폴 영화 특성상 어느 정도 히트가 예고됐지만 ‘국제시장’이 이렇게 빨리 관객들로부터 '독상'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투자사 CJ조차 시사 직후 최종 관객 수를 750만 안팎으로 산정했을 정도였다. 신파 성격이 가미된 만큼 세련된 취향의 10~20대 관객을 얼마나 견인할 지, 개봉 전 제기된 우파 영화 논란 역시 ‘국제시장’ 입장에선 흥행 예측을 어렵게 만든 먹구름이었다.
좌우 이념 논란에 대해 감독과 JK필름은 ‘영화가 개봉하면 저절로 해소될 부분’이라며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게 좋은 선택이 됐다. 한국 전쟁과 파독 광부, 베트남전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작품인 만큼 애초 시나리오엔 이승만과 군사정권 등 당시 시대상과 정치적 배경이 기술돼 있었다.

하지만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이런 정치적 볼륨을 모두 줄이고 대신 인물과 사건에 집중했다. 처음부터 12세 관람가를 목표로 한 만큼 최대한 정치적 에피소드를 덜어내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휴먼드라마와 주인공 덕수의 삶에 줌 인한 것이다.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말다툼하던 덕수 부부가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마지못해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으로 당시의 엄숙주의를 보여줄 뿐이었다.
‘국제시장’은 전 세대로부터 고른 공감과 지지를 받고 있지만, 특히 20대 남녀가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일 까다롭고 호불호가 뚜렷해 취약 계층으로 여겨졌던 젊은 관객이 오히려 ‘국제시장’의 흥행 마중물이 된 것이다. ‘국제시장’의 어떤 힘과 매력이 이들에게 마법을 부린 걸까.
단언컨대 치유와 위로였다는 생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넋두리 식 감상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희생과 헌신을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착한 영화의 힘이었다. 취업과 결혼을 포기하는 3포 세대로 지칭되는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과 그래도 우리보단 살만 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런 반발은 경로석 자리 양보 않기, 국민연금 불신, 결혼 출산 거부 등 구체적으로 표현되며 심각한 세대 갈등과 사회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국제시장’은 부모의 고단한 삶과 노고를 보여주며 자기 정화의 기회를 제공했다. 나만 지옥에 빠진 줄 알았는데 우리 부모, 삼촌들은 더 극심한 지옥을 견뎌낸 사람들이란 걸 확인시켜준 것이다.
‘국제시장’이 대단하고 기특한 건 단순히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데 능해서가 아니다. 냉담한 기성세대와 요즘 청년들을 한데 묶어주는, 거창하게 말해 사회 통합적 기능을 이 영화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친과 봤는데 아버지와 꼭 다시 보겠다’ ‘아빠와 영화 보면서 둘 다 펑펑 울었다’ ‘이 땅의 아버지들 너무 수고 하셨어요’ 같은 후기가 이런 사실을 대변한다.
히틀러는 극장 수 백 개만 지으면 영화를 통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좋은 영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말도 맥을 같이 한다. ‘얄미울 정도로 감정선을 계산해 만든 더도 덜도 아닌 윤제균표 상업 영화’라며 ‘국제시장’을 깎아내리는 목소리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두 시간 동안 진정성 있게 나를 위로해주고 마음속에 느낌표를 찍게 해주는 영화가 한 해 몇 편이나 나오는지 생각해보면 ‘국제시장’의 값진 성취를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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