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수상자의 눈물 가득한 소감보다 강력한 한방은 두고 두고 회자가 된다. 지상파 3사의 시끌벅적했던 시상식이 마침표를 찍었다. 언제나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상식. 영예의 대상 수상자보다 큰 화제에 오른 스타들이 있다. 생방송 시상식의 돌발 묘미를 보여줬거나, 사상 초유의 허나 수긍 가능한 수상 거부를 했거나, 작정하고 ‘19금 농담’을 한 이들 덕에 올해 시상식도 잊지 못한 순간이 여러 발생했다.
# 신동엽 ‘19금 농담’, 시상식 진행의 신의 한수
톱 MC라고 해서 모두 시상식 MC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돌발 변수가 많은 생방송, 거기다 친분이 덜한 스타들이 모여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게 시상식이라는 ‘대형 이벤트’의 실상이다. 때문에 진행자들의 자연스러운 농담과 물 흐르듯 이끌어가는 진행 능력이 중요한데, 신동엽은 매년 시상식 진행을 맡는 베테랑 고수다.

신동엽은 지난 달 30일 열린 MBC 연기대상에서 왜 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방송인인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신동엽은 여자 신인상을 받은 고성희가 긴장한 나머지 MC석 뒤로 퇴장하자 “고성희씨 도대체 왜이러시는 거예요. MC를 보다 이런 적은 처음이네요”라고 ‘굳이’ 고성희의 실수를 크게 언급해 시청자들을 배꼽 잡게 했다. ‘신인’ 고성희의 귀여운 실수와 함께 이를 부각해 웃음을 극대화시킨 신동엽 덕에 공동 수상으로 지루했던 시상식이 활기를 찾았다.
또한 신동엽은 대상 후보자이자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은 오연서에게 특유의 ‘색드립(19금 농담)’을 했다. 그는 오연서를 인터뷰하던 중 “위에서 보니 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라고 말했고 오연서는 가슴 라인이 부각된 의상을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해 얼굴까지 빨개지며 크게 웃었다. 하지만 신동엽은 “머리를 잘 묶었다는 말이다. 왜그러시냐?”라고 자신의 농담이 다른 의미가 있다고 발뺌을 해서 현장을 초토화시켰다. ‘19금 농담’의 대가라고 불리는 신동엽은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웃을 수 있는 농담으로 시상식의 재미를 더했다. 사실 이 같은 농담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재치 있는 신동엽이 했기에 큰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
# ‘어부’ 박유천의 농담에 낚인 전지현, 그리고 짓궂은 이휘재
지난 달 31일 열린 SBS 연기대상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웃음이 터졌다. 바로 박유천이 너무 진지하게 농담을 해서 선배 전지현을 ‘낚았기’ 때문. 박유천은 전지현 등과 함께 ‘10대 스타상’을 수상한 후 “10대 스타상이라고 해서 10대에 주는 상인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 이전엔 영화 위주로 하다보니까 저를 못 알아보는 10대들도 있었다. ‘별그대’ 이후 이 상을 받아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10대 스타상’은 SBS가 매년 스타 10명에게 안기는 상. 박유천의 너무 진지한 농담을 사실로 받아들인 전지현의 깜찍한 실수였다. 이휘재는 “10대가 주는 상이 아니라, 10명이라서 10대인 거다”라고 정정한 후 거듭해서 의도하지 않게 농담으로 전지현을 낚은 박유천에게 “고맙습니다”라고 강조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휘재의 짓궂은 장난에 실수를 한 전지현도, 한순간에 ‘어부’가 된 박유천도 민망한 순간을 맞았고, 시청자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 사상 초유의 수상 거부, 최민수답다
최민수는 지난 달 30일 열린 MBC 연기대상에서 '오만과 편견'으로 황금연기자상을 받게 됐다. 하지만 함께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백진희가 무대에 올라 대리 수상을 했다. 이후 그는 최민수가 남긴 수상 소감을 전했다. 백진희는 “다른 때도 아니고 요즘은 제가 법을 집행하는 검사로 살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뭐 잘한 게 있어야 상을 받죠. 그죠? 해서 죄송스럽지만 이 수상을 정중히 거부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한 뒤 “뒷부분이 더 있었는데, 잃어버려서 다 읽지 못했다. 죄송하다”고 최민수의 수상 거부를 알렸다.
관계자에 따르면 최민수가 전달한 수상 소감 뒷부분에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오만과 편견’을 끝까지 사랑해 주실 거죠? 그죠?"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바로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소신 있는 언급인 것. 이 같은 예상하지 못한 수상 거부는 평소 엉뚱하거나 소신 있는 발언을 줄곧 해온 최민수였기에 수긍 가능하다는 반응이다.
# “자업자득”...김구라의 웃기고 짠했던 ‘셀프디스’
지난 연말 방송계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안타까운 소식들이 이어졌다. 바로 방송인 김구라가 아내의 빚보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 잠시 방송을 쉬었던 김구라는 지난 달 29일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에 깜짝 등장해 동료들을 축하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혼자 유난을 떨어 죄송스럽다. 자업자득이다. 건강하지 못한 모습 보여드려 죄송하다. 여러분의 가정 행복하시길 바란다”라고 ‘셀프 디스’를 했다. 또한 “수염은 면도할 시간 없었다. 칩거 후 나타난 정치인처럼 수염을 길러 봤는데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가정사가 세상에 알려진 가운데, 힘든 심경 속에서 던진 농담은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김구라는 당시 유재석 등과 함께 대상 후보였는데 시청자 투표에서 자신보다 적은 표를 받을 것 같은 후보에 대한 질문에 “내가 지금 그런 것이 무슨 의미냐”고 말해 웃음을 줬다.
# 개그맨들의 가슴 찡한 의리, 김준호 위로받았다
김준호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코코엔터테인먼트의 공동 대표 김모 씨가 횡령을 한 후 잠적하면서 회사가 공중분해 될 가능성에 놓여 있다. 현재 코코는 소속 개그맨들의 수입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월급도 체납돼 있는 상태. 소속 개그맨들은 주 활동 무대인 KBS 시상식 뿐만 아니라 MBC와 SBS 시상식에서도 김준호를 응원했다.
김준현은 "선배이자 친한 형이자 나의 사장이었던 영원한 우리 보스"라고 김준호를 일컬으며 "지금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똘똘 뭉쳐 이겨내고 있으니 걱정 말아 달라"고 지켜보는 이들에게 당부하며 김준호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또 다른 후배인 김지민 역시 김준호에 대해 “선배님이 항상 말했다. '돈을 남기는 것보다 사람을 남기라'라고 하시더라”며 “김준호 선배님은 사람을 너무 많이 남겼다. 주변에서 '어느 한 사람 때문에 네가 많이 힘들지'라는 소리를 듣는데 우리는 선배님 한사람 때문에 흩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상의 영광을 선배께 돌린다. 힘내세요"라고 위로했다.
이국주도 SBS 연예대상에서 뉴스타상을 수상한 후 울먹이며 "저희 배신하지 않고 똘똘 뭉쳐 기다리고 있다"며 김준호를 향해 이야기한 뒤, "코코엔터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김준호를 위로하는 후배 개그맨들의 의리와 사랑은 대상의 감동적인 순간만큼이나 시청자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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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SB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