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영규의 호탕한 오페라가 객석에 앉은 후배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박영규는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진행된 ‘2014 KBS 연기대상’(MC 김상경 서인국 박민영)에서 장편드라마 부문 남자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2014년 KBS 최고의 화제작 ‘정도전’에서 이인임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인임은 권력욕이 넘치는 ‘정치 9단’으로 정도전과는 대립각을 그렸던 인물. 절대 악인이 없는 드라마였던 만큼 이인임을 그저 흔한 악역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으나 고려 말 절대 권력을 차지하며 주인공들에게 위협이 됐다는 점에서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인임 역을 통해 ‘최고의 악역’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박영규는 남자우수연기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무대에 나와 “연기자 꿈을 키운지 40년이 넘어 KBS에서 처음 상을 받는다”는, 다소 놀라운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가 연기 경력을 볼 때 '상을 처음 받는다'는 말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놀라웠던 수상소감은 감동으로 이어졌다. 스태프 및 제작진에게 고마움을 표한 박영규는 이어 약간의 뜸을 들인 후 “이렇게 좋은 날이 되면, 한 쪽으로는 기쁘고 행복하지만, 이런 좋은 날은 항상 보고 싶고 생각나는 하늘에 있는 아들…”이라며 죽은 아들을 언급했다.
그는 “그 아들에게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살고 있다. 내가 열심히 살면서 빛이 나면 그 빛이 하늘에 가고, 아들이 그 빛으로 아빠를 알아보라고 열심히 살았다. 우리 아들을 위해 기분 좋은 상패를 들고 노래 한 번 하겠다”고 말한 후 박수를 받으며 노래를 시작했다. 박영규가 부른 노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배의 노래’. 밝은 곡조와 분위기의 곡이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노래는 객석에 앉아있던 후배들과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박영규의 감동 소감은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는 말로 끝났다. 그는 "카메라 더 가까이 와달라"고 말한 후 "세월호 가족 여러분, 용기 잃지 말고 삽시다"고 진심을 전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소감 발표임에도 객석은 큰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박영규의 개인적인 아픔은 반전이라면 반전이랄 수 있었다. 늘 유쾌한 모습을 보였던 박영규였고, '정도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배역을 능숙하게 소화해 낸 그였기 때문이다. 눈물로만 그치지 않고 감동적인 노래로 표현한 박영규의 수상소감은 그래서 한동안 인상적인 시상식 소감 중 하나로 손꼽힐 것이다.
eujenej@osen.co.kr
2014 KBS 연기대상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