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왕을 연기하는 배우가 있다. 꽃미남 외모의 성종이다.
배우 유장영은 영화 '어우동:주인 없는 꽃'(이수성 감독, 이하 어우동, 1월 1일 개봉)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했다. 첫 영화에 사극, 그리고 노출. 신인에게는 쉽지 않은 작업이 분명했을 터.
단도직입적으로 첫 질문에서부터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 이에 그는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을 꼽았지만 이 마저도 "어렵기 보단 아쉬웠던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조곤조곤 말했다. "다 배움이고 감사했죠. 어렵고 힘든거요? 그런 건 없었어요. (여름에 찍어서 분장과 의상이 괴로웠을 것도 같아요). 제가 더위도 많이 타지만, 그런 땀조차도 다 감사했습니다. 좋은 사람들도 알게 됐고, 하나씩 만들어가는 소중한 재미가 너무나 컸으니까요."

'어우동'은 양반가에서 태어나 곱고 아름다운 자태와 지성까지 겸비한 한 여인이 남편에게 배신당한 후 복수를 위해 왕조차 탐하고자 했던 최고의 꽃으로 다시 태어난 여인 어우동의 조선을 뒤흔든 역사적 스캔들을 담은 작품.
극 중 유장영은 성종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성종은 실제 역사 속에서도 이동의 조카이자 그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왕의 자리를 지켜낸 인물. 무슨 일이 있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어우동에게 한 눈에 반해 일명 '어우동앓이'를 하며 정사에 소홀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유장영은 어우동 역 송은채와 호흡을 맞춰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낸다. 특히 근엄한 왕의 모습부터 어우동에게 반해 사랑에 빠진 사내의 깊이 있는 눈빛까지 선보인다. 새롭게 등장하는 '꽃미남' 성종이다.
그는 이번 작품에 최고의 정성을 쏟고자 노력했다.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영화를 찍기 전 선릉에 가서 인사드렸어요. 성종에 대한 공부도 나름 많이 했고요. 인수대비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아버지였고, 후궁이 가장 많았던 왕이고, 성종이 왕으로 있을 때 태평성대했다는 것들 외에도 그 분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종이 왕으로서 가진 불안함과 초조함, 경계심 같은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죠. 많은 걸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외롭고 고독한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요."
특히 유장영이 주안점을 둔 감정선은 남편으로서 폐비 윤씨를 떠나 보낸 부분이다. 사랑했던 아내. 하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 성종이 실제로 어우동을 보며 폐비윤씨를 그렸던 것 같다는 유장영은 "어우동의 춤사위를 보면서 폐비 윤씨를 많이 생각하고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우동을 통해 폐비윤씨에 대한 공허함을 채운다고나 할까"라고 자신이 생각한 성종에 대한 분석을 들려줬다. 누구보다 깊이 성종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애쓴 그다.

"왕은 배우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부담감이 컸죠. 제가 감히 왕이라는 배역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고요.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말 수도 많이 줄이고 에너지도 톤 다운 시켰죠. 걸을 때는 일부러 뒷짐을 지고 걷기도 하고요. 사극 톤이 어려웠죠, 물론. 그런데 결정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뻔뻔스럽게. 하하하."
실제로 겸손하지만 배우로서의 자긍심과 자신감이 반짝 반짝 스며나온다. 감독이 이 청순한 꽃미남 왕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께서 왜 절 선택하셨냐구요? 글쎄, 제가 도도해보이는 게 있었던걸까요? 심장은 두근거리지만 뻔뻔하게, 간절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덤덤하게 감독님과 미팅을 마쳤어요. 잠자기 전 대본을 끌어안고 잤죠. 다음 날 오후 2시에 연락이 왔어요. 제가 했으면 좋겠다고요. 정말 행복해 소리를 지를 뻔 했습니다."
도시적인 외모와는 달리 완도 청년이다. 배우의 꿈 하나만을 갖고 23세 때 완도에서 서울에 올라 왔다. 당시 고향에 드라마 '해신' 세트장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연예인이 왔다고 신나서 담 넘어 구경하는데 뭔가 빨려드는 느낌이 들었단다.
스스로 잠재된 끼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몇 개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어머니께 무릎을 꿇고 말했다. "1년만 후회없이 (연기)하고 오겠다"라고. 어부 일에 소질이 많았던 그는 고향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물려받게 될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말릴 수 없었다. 어머니는 "니가 정 그러면 갔다 와 봐라" 하셨단다.

그렇게 24살, 대학로 극단에서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무대가 제일 좋다는 그다. 혼자 울기도 많이 울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 좀 더 나은 미래의 나가 있기 위해서는 푸념할 시간이 없단다. "늘 나를 쉬운 곳으로 안 보내시는 것 같아요. '강하게 크거라' 이런 뜻이 있지 않을까요."
극단 생활을 거친 후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2012', '최고의 결혼','하숙 24번지', 그리고 '어우동'까지. 조금씩 길을 오르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그래서 전 복권을 안 사요. 고생한 만큼 얻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직 뭔가를 얻지 못했다면 그 만큼 노력을 안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 화제를 모은 베드신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촬영 전, 5시간 동안 운동을 열심히 했다"라는 그는 긴장하지 않은 척 했지만, 너무나 긴장했다며 웃어보였다. "최소 스태프만 들어와서 진행해도 긴장이 되더라고요.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풀리고 편안한 내 집 같아졌어요. 무엇보다도 상대 역 은채가 잘 배려해준 덕이 컸죠."
배우로서 롤모델을 묻자 "개인적으로 차태현 선배님이 독보적인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고, 그 특유의 밝고 유쾌한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보는 사람이 미소지을 수 있는 흐뭇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게 지향하는 목표죠. 제 연기를 통해 잠시나마 웃게 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제 소원입니다."
'신스틸러'라는 수식어를 갖고 싶다는 그는 지금보다 한층 넓은 스펙트럼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에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제를 잃지 않는다.

"지금처럼만 했으면 좋겠어요. 2014년은 너무나 감사한 한 해였고 올해에도 열심히 뛰다보면 그 이상의 좋은 결과와 성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크게 욕심내고 싶지는 않아요. 화려하면 좋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 보이지 않은 그림자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2015년을 맞아. 늘 그를 응원해주는 가족에게도 한 마디. "아버지가 좀 편찮으신데 건강을 어서 찾으셨으면 좋겠고 엄마, 아들 정말 잘 하고 있어요. 지켜봐주세요. 관객분들, '어우동'으로 뜨겁게 한 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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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어우동' 스틸(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