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강하늘의 사부는 '국제시장' 황정민이다. 2014년 연말에는 사제가 스크린(황정민 '국제시장')과 TV(강하늘 '미생')으로 대활약을 펼쳤다. 이 둘은 어떻게 만나서 이렇듯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중일까.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두루두루 인재를 찾던 황정민, 어느 날 뮤지컬에 푹 빠져 살던 떡잎 강하늘을 발견하고 소속사 샘컴퍼니로 스카우트했다. 사제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톱스타가 된 후로도 황정민은 '라만차' 등 뮤지컬 출연을 소홀히 하지 않는 천생 연기자다.
젊은 시절, 연극 무대를 집 삼아 혹독한 연기 수업을 견뎌낸 뒤 오늘의 자리에 오른 그는 배우라면, 본업인 연기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한다는 지론을 품고 산다. 후배와 제자 조련에도 엄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누아르 명작 ‘신세계’ 속 조폭 두목 정청 마냥 밖으로 칼을 들었지만 속에는 정을 품고 후배이자 제자를 가르치는 스타일이다.

'추격자' '김복남 살인사건'의 대표적인 연기파 여배우 서영희가 극단시절 황정민의 한참 후배였다. "황정민 선배가 진짜 무서웠다. 연기 열심히 하라고 혼 많이 났다"고 당시를 떠올린다.
강하늘도 황정민 사단에 입문한 뒤 연극과 TV, 영화 등을 정신없이 오가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사람이 끼니를 거르면 살 수 없듯이 배우가 연기를 쉬어서는 안된다'는 스승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황정민처럼 그도 다작을 하면서 여러 무대를 거쳤다. ‘미생’으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강하늘은 바로 연극 '해롤드&모드'에 오른다. 돈 되는 CF들 찍으면서 이 작품 저 작품 골라보자는 연예계 신데렐라 증후군이란 그의 사전에 없는 모양이다.
엄한 스승 밑에서 연기만 배운 게 아니다. ‘미생’ 촬영이 끝난 후 저녁 자리에서 그를 돌봐주는 매니저들에게 수 백 만원 ‘돈봉투’를 돌렸다. 돈이 많아 유세 떤 것이 아니었다. 강하늘의 한 지인은 "제가 잘 된 건 '다 형들 덕분'이라면서 매니저 전부에게 사례를 했다. 주위에서 칭찬을 많이 받는 신예들은 보통 자신이 해낸 성과에 더 집중하는 편인데, 오히려 주위에 그 공을 돌렸다"고 귀띔했다. 나이 들기도 전에 고개 숙이고 감사하는 자세부터 제대로 배운 셈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에 쉬지않고 출연하는 것도 사제가 똑같다.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 악독한 백사장, '너는 내운명' 시골 순정남 김석중,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우직한 형사 나두철(이상 2005년), '사생결단'(2006) 폭주하는 경찰 도 경장, 공포물 '검은 집'(2007)의 전준오, 허진호 감독의 멜로 '행복'(2007) 속 바람둥이 클럽 사장 영수 등 액션, 스릴러, 공포, 멜로, 코미디 등 온갖 종류의 작품을 섭렵했다.
강하늘도 영화 '평양성'(2011년) 단역으로 출발해 드라마 '몬스타', '투윅스' '상속자들'(이상 2013년)에서 조연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포영화 '소녀괴담'에서는 생애 첫 장편 주연으로 이름을 알리고 드디어 '미생'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명문대 출신 대기업 신입사원 장백기 역할로 강하늘 이름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렸다.
'미생'으로 스타덤에 오른 강하늘의 성공은 하루 아침에 탄생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장백기 역할은 20대 차도남의 고민과 갈등을 오롯이 배우의 힘으로 표현할 진짜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였다. 준비된 강하늘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연기력 논란에 휘말려 좌절을 겪었을 가능성 높았다.
황정민과 강하늘, 이런 사제 관계가 더 많아질수록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질과 수준도 더 향상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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