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KOVO, 땜질이 집값 떨어뜨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01.03 07: 38

10살이 됐다. 아직은 세상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직은 배워가는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또래보다 더 똑똑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주위의 신뢰를 독차지하는 것은 세상만사의 이치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금 ‘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올 시즌 흥행을 이어가며 순항하던 프로배구는 2014년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발단은 지난 29일 오후 배구팬들을 술렁이게 했던 현대캐피탈과 한국전력의 2대1(권영민·박주형서재덕) 임대 트레이드였다. 시즌 중 트레이드가 그다지 많지 않은 환경에 임대 트레이드였다는 점, 포함된 선수들이 팬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한 이름값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상위권 판도에 미칠 영향 등까지 ‘3박자’가 고루 물린 이슈였다.
팬들의 수많은 관심이 몰렸다. 언론도 트레이드 손익 계산과 향후 판도에 주목했다. KOVO도 30일 오전 공시를 했다. 해당 선수들은 새로운 소속팀의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규정을 들어 이 트레이드를 거세게 반대했고 KOVO가 한 발 물러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규정을 잘못 적용한 KOVO의 문제였다.

KOVO 선수등록규정 제7조 3항을 보면 트레이드는 정규시즌 4라운드 시작일 이전까지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두 팀은 3라운드가 끝나자마자 신청했으니 이 규정에는 걸림돌이 없었다. 그러나 선수등록규정 제12조 2항이 문제였다. 임대 트레이드의 경우는 정규시즌(포스트시즌 포함)에는 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시즌을 접은 하위권 팀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등 편법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두 규정이 상충됐는데, KOVO는 후자를 놓치고 전자의 광의적 해석에 눈을 기울였다. 이해당사자들인 타 구단의 반발은 당연했다.
결국 KOVO는 31일 트레이드 공시를 공식적으로 철회한다고 발표하면서 “금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관련 제도의 보완과 행정적 오류에 대한 재발 방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아울러 해당구단 및 선수, 배구팬들에게 큰 상처와 혼란을 드린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정중한 사과를 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결과적으로 KOVO의 미숙한 행정적 처리에 해당 구단 및 선수들만 상처를 받은 셈이 됐다.
그냥 지나갈 일은 아니다.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최상위단체가 금지옥엽처럼 다뤄야 할 규정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 규정상 상충되는 요소가 있는 맹점 또한 드러났다. 오는 2일 임시이사회에서는 KOVO가 해당 구단에 공식 사과한 것에 이어 연맹 관계자들이 징계를 받았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어쨌든 이리 저리 망신이다. 공교롭게도 올 시즌은 프로배구 출범 이후 10년이 되는 해다. KOVO는 지난 몇 년간 양적 팽창, 경기 수준의 향상 등을 포괄적으로 추진했고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며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하나의 실수에 그간의 노력이 크나 큰 생채기를 받을 위기에 놓였다.
물론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하다보면 실수나 시행착오가 생기고,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경험은 쌓여간다. 따지고 보면 KOVO도 그런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KOVO의 규정 자체에 상당히 많은 허점이 있다. 규정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명확함 없이 느슨하다.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도 다른 규정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대한항공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비디오판독 소동도 비슷했다. 감독들도, 심지어 현장에 있던 KOVO 관계자들도 당시 상황에 대한 명확한 유권해석을 내려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가이드 라인이 없었고 역시 규정을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결국 KOVO는 다음날 다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회의를 거쳐 규정을 보완해야 했다. 이번 트레이드 사태도 “관련 제도를 보완하겠다”라는 수준에서 일단락됐다.
이처럼 땜질이 계속되면, 그 집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그 집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힘차게 달려가다 큰 시련을 경험한 KOVO가 원점에서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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