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끝난 슈틸리케호, 아직 끝나지 않은 수문장 전쟁
OSEN 이균재 기자
발행 2015.01.05 06: 02

슈틸리케호의 실험은 끝났지만 수문장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FIFA랭킹 69위)은 지난 4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퍼텍경기장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FIFA랭킹 102위)와 평가전서 상대 자책골과 이정협의 추가골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역대 A매치 전적에서 17전 5승 7무 5패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시안컵 예열을 마쳤다.
사우디전 뒷문의 주인공에 시선이 쏠렸다. 앞서 정성룡, 김승규, 김진현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시안컵을 앞두고 갖는 최종 모의고사인 만큼 이날 골문을 지키는 주인공이 중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김진현이 선발 출격의 기회를 잡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골키퍼인 정성룡과 김승규를 따돌렸다. 후반 들어서는 김승규가 김진현과 바통을 터치하며 그라운드를 밟았다. 반면 경미한 부상으로 훈련이 부족했던 정성룡은 쉼표를 찍었다.
정성룡이 주춤한 사이 후배들이 틈을 박차고 올라왔다. 김진현과 김승규는 나란히 한 차례씩 선방쇼를 펼치며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훔쳤다. 김진현은 전반 중반 골대 구석을 향하는 오버헤드킥을 손끝으로 쳐냈다.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긴 팔의 강점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김승규도 이에 질세라 후반 중반 사각지대로 날아오는 벼락같은 슈팅을 몸을 던져 막아냈다. 김승규 특유의 슈퍼세이브가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다만 둘 모두 킥 실수로 치명적인 장면을 만들 뻔한 점은 과제로 남았다.
김승규는 경기 후 믹스트존 인터뷰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경기였다. 바람의 영향을 신경쓰지 않고 킥 미스를 해서 흐름을 몇 번이나 끊었다. 반성해야 한다"고 겸손의 미덕을 보이면서도 경쟁자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 올렸다. 그는 "(정)성룡이 형은 이번에 부상 때문에 훈련을 많이 못해서 빠진 것이다. 훈련을 계속 했으면 누가 나갔을지 모른다"면서 "(김)진현이 형은 내가 17세 청소년 대표를 할 때 19세 대표를 해서 많이 봤던 선수다. J리그서도 좋은 골키퍼로 소문이 났다. 대표팀서 훈련을 할 때마다 느낀 것인데 발기술이 좋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김진현은 "선발로 나온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팀 승리를 더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다. 선방 장면은 팀 승리를 위해 골키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내가 잘 막았다기보단 (김)승규나 (정)성룡이 형도 그랬을 것"이라며 "누가 뛰든지 팀이 이길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했다. 승규가 후반에 나올 때도 그랬다"고 선의의 경쟁을 강조했다.
실험은 끝났지만 뒷문 주인공은 아직 가려지지 않았다. 가장 앞서 있는 김진현과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김승규, 그리고 부상으로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정성룡 중 누가 골문에 나서도 이상하지 않을 경쟁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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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호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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