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구자철(마인츠)에게 필요한 건 4년 전의 좋은 기억이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FIFA랭킹 69위)은 지난 4일(한국시간) 호주 시드니 퍼텍경기장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FIFA랭킹 102위)와 평가전서 상대 자책골과 이정협의 추가골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뒀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역대 A매치 전적에서 17전 5승 7무 5패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시안컵 예열을 마쳤다.
슈틸리케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지만 웃지 못한 태극 전사가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존재감을 영 발휘하지 못했던 구자철이다. 시종일관 답답했고,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예전의 위협적인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구자철은 이날 슈틸리케호의 황태자인 남태희(레퀴야)를 밀어내고 처진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격했다. 주장 완장의 책임감은 덤이었다. 의욕은 넘쳤다. 특유의 활동량을 앞세워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수장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다. 실속이 없었다. 상대 골대와 먼 지점에서 공을 끌다 뺏기는 장면은 상대의 역습을 자초했다. 전반 초반 크로스바를 맞힌 손흥민의 슈팅을 도운 게 유일하게 빛난 장면이었다.
후반 들어 자신과 바통을 터치한 남태희의 인상적인 활약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남태희는 종료 직전 날 선 크로스로 이정협의 쐐기골을 돕는 등 종횡무진 활약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다시 한 번 찍었다.
구자철로선 득점왕을 차지했던 4년 전의 좋은 기억을 떠올려야 한다. 그는 지난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서 부상으로 빠진 박주영의 빈 자리를 말끔히 메웠다. 조광래 감독의 신임 아래 처진 스트라이커로 변신해 대회 득점왕(5골)에 올랐다.
지금 구자철에게 필요한 건 4년 전의 간결한 플레이다. 자신의 최대 강점인 간결한 퍼스트터치와 군더더기 없는 플레이가 절실하다. 그래야 본인도 부진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고, 슈틸리케호도 산다.
장점이었던 구자철의 방향전환은 어느새 안좋은 의미의 전매특허가 돼 버렸다. 골문 근처가 아닌 상대 역습이 용이한 지역에서 시도한 탓이다. 구자철은 4년 전 상대를 공포에 떨게 만든 존재였다. '간결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자철에겐 많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다. 4년 전의 기억을 되새겨야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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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호주)=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