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장그래와 '토토가' 가수들, 눈물은 하나다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5.01.09 11: 51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최근 드라마, 영화, 예능이 모두 각 세대별 아픔을 정확하게 짚어내면서 다양한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각 세대별로 각기 다른 인물에 이입해 서로 다른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모두가 '현재'의 각박함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추억의 아름다움', '뛰어난 완성도'만 찬양할 수는 없는 상태다. 
천만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 '국제시장'은 6.25 세대인 덕수를 통해 근현대사를 일부 훑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개인의 안전과 행복 추구 '따위' 감히 꺼내들 수 없었던, 가장의 절대적인 희생을 통해 겨우 일어설 수 있었던 당시를 조명하는데,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참긴 어렵다. 바로 옆사람이 죽어나가는 피난길, 머나먼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는 모습, 베트남 전쟁에서 목숨을 잃을 뻔 하는 일,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눈물이 쏟아지는 이산 가족 찾기 등은 굳이 그때를 겪지 않아도 몸서리쳐질만큼 생생했다. 
이 처절한 고생담은 이를 몰라주는 자식 세대와 대비를 이루며 더 또렷해졌다. 일부에서는 다른 메시지를 읽어내기도 했다. 일부러 뺀 정치색이 오히려 다른 정치색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아버지의 절대적인 희생만 그려지는 게 '요즘 애들은 고생을 몰라'로 비약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런데 특이한 건 정작 '요즘 애들'인 20대는 대체로 이 영화를 보며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 극장에서는 영화에 호평을 보내는 20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20대 '미생'들이 한창 부대끼고 있는 적은 덕수 세대가 아니라 586세대, X세대다. 그들도 불안하긴 매한가지지만, 어찌됐든 한정된 자리를 두고 그들과 경쟁해야 하는 장그래들은 이 사회의 판이 비교적, 혹은 절대적으로 기성세대에 유리한 게임이라고 느낀다.
'미생' 속 장그래는 고졸 학력에 기적적으로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가 겪는 소외감과 주눅듦에는 많은 대졸자들도 공감했다. 대졸이든, 고졸이든, 사회 조직에 적응하기 힘든 20대들의 고충이 장그래를 통해 표출된 것. 하루하루 시험 받는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인턴 시절, 열심히 해봐야 계약 연장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없는 계약직 시절을 통과하는 장그래의 20대는 '말도 안되게' 이상적인 상사 오상식, '믿을 수 없게' 착한 동기들만으로는 위로되지 않는 아픔이다. 그리고 '미생'은 그 아픔을 이제야 겨우 정면에서 다룬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돌연 장르를 바꿔 판타지로 끝내버렸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다.
덕수와 장그래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X세대는 그저 신나게 놀던 과거가 그립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전쟁을 겪은 적도, 민주주의를 위해 취루탄을 던져본 적도 없다. 그래서 스스로 촌스럽지 않다고 자부한 세대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판을 바꾼 것처럼 세상을 바꿀 줄 알았고, H.O.T와 젝스키스가 그랬듯 기성세대와 절대적으로 다를 것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물론 착각이었다. IMF는 사회의 룰을 바꿨고, 치열한 경쟁에 내몰렸다. 잘 먹고 살 줄 알았던 586 세대는 정년을 못채우고 짐을 싸는데, 외국어에 자격증에 고스펙을 온몸에 휘두른 20대들이 '싼 값'에 몰려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면 어느새 자신의 모습은, 그토록 경멸했던 기성세대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찬란하고 순수했던 90년대를 담은 작품이 너무나 그립다. '건축학개론'을 보며 첫사랑을 떠올리고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학창시절을 추억한다. 이들이 '토토가'를 보며 흘린 눈물은, 학창시절 우상에 대한 반가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문화의 중심'일 줄 알았던 자신의 비루한 '현재'에 대한 통탄이 바탕에 깔려있다.
드라마, 영화, 예능에서 독보적인 화제를 뿌리고 있는 작품이 각 세대의 눈물을 정조준('토토가'는 우연히)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청춘이든 아니든, 현재 모든 세대는 매우 아프며, 그 아픔을 위로, 혹은 보상해주는 작품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rinn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