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그야말로 미쳤다. 굳이 연기 잘한다고 말하면 서운할 ‘연기의 신’ 중견배우 3인방 조재현, 박원숙, 김해숙의 캐릭터 장악력이 안방극장을 휘어잡았다. 세 명 모두 어디 하나 평범한 인물이 아니어서 더욱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 중이다.
현재 조재현은 SBS 월화드라마 ‘펀치’에서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비리를 저지르다가 형 이태섭(이기영 분)을 잃은 검찰총장 이태준을 연기 중이다. 태준의 건드리면 안 되는 마지막 뇌관은 태섭이었는데 태섭이 자살한 후 악랄한 복수는 시한부 인생의 박정환(김래원 분)을 짓누리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만 보면 태준은 분명히 악인. 허나 조재현은 이 같은 캐릭터를 단순하게 만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지독히도 가난했던 경험, 그리고 형에 대한 깊은 우애, 매섭도록 냉정하지만 인간미가 느껴지는 모습이 복합적으로 담기며 태준은 지독히도 ‘나쁜 놈’인데 자꾸 정이 가는 인물이 됐다.

물론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대사대로 극중 인물들이 정도의 차이가 있지, 모두 악한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재현의 풍부한 표현력과 한 장면 한 장면을 모두 집어삼켜버리는 놀라운 흡인력은 몰입해서 보던 시청자들조차 감탄을 하게 만든다. 지난 해 유동근과 함께 KBS 연기대상 후보이기도 했던 그의 진공 청소기를 보는 듯한 화면 장악력은 ‘펀치’의 긴박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말이 필요 없는 배우 박원숙은 SBS 주말드라마 ‘할매가 돌아왔다’에서 50년 전 피치못할 이유로 가족을 버리고 한국을 떠난 후 200억여 원의 자산가가 돼 돌아온 정끝순을 연기하고 있다. 화려한 옷차림과 핑크색 염색머리, 범상치 않은 이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재산을 자랑할 때는 귀여운 눈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보통은 상대를 기죽이는 쏜살 같은 말솜씨를 자랑한다.
이 드라마는 유쾌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박원숙의 완급 조절이 빛을 발한다. 망가지는 연기도 아닌데, 재밌어야 하는 순간 잔뜩 힘을 빼서 웃음 가득한 장면을 만드는데 연기 내공이 없다면 자연스럽지 않게 연결됐을 터다. 다작을 해도 그리고 다소 캐릭터가 겹쳐도 작품 속에서 이질감이 없는 것도 박원숙의 힘이다.
사실 박원숙은 ‘황금무지개’, ‘백년의 유산’, ‘호텔킹’ 등에서 대놓고 악역이거나 다소 악한 성향이 있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가공할 만한 카리스마를 뿜어댔다. 보통 악역을 하면 잔상이 오래 남기 마련인데, 박원숙은 선과 악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강점이 있어 ‘떴다 패밀리’의 비밀을 품고 있는 귀여운 할머니 끝순의 매력이 배가 되고 있다.
역시 김해숙이 단순히 조력자로만 등장할 배우가 아니었다. 김해숙은 SBS 수목드라마 ‘피노키오’의 커다란 반전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재벌이지만 선량한 줄 알았던 황수자는 사실 재력으로 크나큰 비리를 저지르며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기하명(이종석 분) 아버지 사건의 배후였다.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아들”을 외치던 수자가 섬뜩한 속내가 차츰 드러난 것은 후반부부터였다. 그동안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던 김해숙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돌변한 장면은 ‘피노키오’를 보던 안방극장을 소름 끼치게 했다. ‘국민 어머니’로 불리는 동시에 악으로 똘똘 뭉친 인물을 연기하며 시청자들을 쥐락펴락했던 이 배우는 이번에도 몇 장면 나오지 않아도 극을 휘어잡는 매서운 힘을 보여줬다.
김해숙이 등장할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이는 것은 대사 한 마디도 허투루 연기하는 법이 없어 출중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그는 소녀 감성과 악마 본능을 오가는 독보적인 악역 연기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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