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천만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지난 13일 14번째 천만 영화에 등극했다. 한국 영화로는 11번째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8일 만에 200만, 10일 만에 300만, 12일 만에 400만, 15일 만에 500만, 16일 만에 600만, 18일 만에 700만, 21일 만에 800만, 25일만에 900만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해왔다. 천만 돌파는 28일만에 이뤄졌다. 12일만이었던 '명량'보다는 늦지만, 32일만이었던 '변호인'보다는 빨랐다.
사실 '국제시장'의 천만 돌파는 충분히 예견돼 온 일. 이미 '해운대'로 흥행력을 입증받은 윤제균 감독에, 중장년층의 향수를 부르는 소재까지, 흥행은 보장됐었다. 개봉 초반 정치색 논란이 불거지면서 암초를 만나는 듯도 했으나, 영화의 감동 코드로 무난히 범대중적인 공감대를 자극해낸 것으로 풀이된다.

# '쌍천만' 윤제균의 흥행공식
윤제균 감독은 이미 2009년 '해운대'로 천만 고지를 넘었다. 부산 해운대 바다라는 익숙한 배경에, 쓰나미를 결합해 한국형 블럭버스터를 탄생시킨 이 영화는 '저 일이 나한테 닥칠 수도 있다'는 공감을 정조준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국제시장' 역시 '내 얘기', 혹은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에 흥남 철수, 파독 광부, 베트남 전쟁 등을 결합하면서 공감과 스케일을 모두 노렸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에, 웃음과 눈물이 뒤섞이는 연출은 가장 대중적인 한국 영화 흥행 공식이기도 하다. '해운대'는 설경구, 하지원의 열연 못지 않게 김인권의 코믹 연기가 압권이었다. '국제시장' 역시 황정민, 김윤진의 감정 폭 큰 연기 속에 오달수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쓰나미에 가족을 잃는 장면이나,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 눈물샘을 자극할만하다.
윤제균 감독은 "어린 친구들이 역사적인 사실을 잘 모르지 않나. 그런 친구들에게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특히나 더 잘만들고 싶었다. 기존 윤제균 표 영화 하면 좋게 얘기하면 재미와 감동, 나쁘게 얘기하면 웃음과 신파 아니겠나.(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뻔한 신파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 우파 논란이 득 됐다?
논란 역시 예상은 됐지만, 꽤 떠들썩 했다. 정치색을 지운 게 또 다른 정치색을 의미한다던가, 아버지의 희생을 강조하면서 요즘 세대의 고생을 '엄살'로 치부한다는 등의 의견이 큰 이슈를 낳았다. 또 다른 편에서는 건강한 우파 영화로 치켜세우면서 영화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특히 허지웅은 '이 고생을 자식 세대가 아니라 우리가 해서 다행'이라는 덕수의 대사에 깔린 기성세대의 의식을 두고 '토나온다'는 발언을 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결과적으론 흥행에 도움이 됐다. 어떤 영화기에 저러나 궁금증이 높아지면서, 당초 '칙칙한' 영화를 보지 않았을 젊은 관객들까지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관객수가 불어나면서 영화를 어렵게 해석하기보다는 감동 코드와 각자 아버지를 대입하는 데에 반응이 집중되면서 논란은 많이 상쇄된 상태다.
윤감독은 "극장에서 꼬마 아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나란히 앉아있는 광경을 자주 봤다. 정말 울컥했다. 내가 영화를 하면서 정말 바라던 바를 실현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논란에 대해서는 "영화를 만들면서 근현대사가 진짜 이렇게 아프고 슬플 수가 있을까. 역사 자체가 슬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역사가 드라마틱했던 것도 있고, 너무나 아프기도 하고 너무나 자랑스럽기도 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이 다양해서 반응도 다양한 거 같았다. 그 어떤 의견도 틀렸다고 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 천만 영화, 더 많아질까
'국제시장'는 2014년 개봉작 중 '겨울왕국', '명량', '인터스텔라', 이후 네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영화 흥행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을 비판하기도 하는 상태. 배급사가 1000여개의 스크린을 몰아주면서 흥행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스크린에 상당 부분 관객이 들어차면서, 관객의 선택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을 볼 수 있다. SNS 등으로 입소문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고, 한번 붐을 타면 너도 나도 관람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흥행작에 대한 기대감이나 궁금증이 예전보다 훨씬 더 높아진 것. SNS의 발달과 '변호인', '명량' 등으로 영화관 나들이에 익숙해진 중장년층의 발빠른 움직임이 한달 안에 천만 관객이 극장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게 된 것이다.
한 영화관계자는 "영화 이슈의 폭발력이 더욱 빨리, 강하게 집중되고 있어, 콘텐츠의 질만 받쳐준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천만 영화가 탄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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