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LA(미국 캘리포니아주), 박승현 특파원]미국 사람인 토미 콜드웰과 케빈 조거슨. 둘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고 있는 사람들에 속할 것 같다. 지난 해 12월 28일(이하 한국시간)부터 지금 이 시각 까지 그들은 세상에서 제일 큰 바위덩어리가 만들어낸 절벽에 매달려 있다. 그들이 극복해야 하는 높이는 900M가 넘는다. 수직을 넘어 90도가 넘는 오버행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절벽의 높이다.
콜드웰과 조거슨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앨캐피탄을 오르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어지간한 클라이머들은 다 이곳에 오른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오름 짓은 좀 별난 데가 있다. 엘캐피탄에서도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진 혹자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힘든 바윗 길이라도고 하는 던 월(DAWN WALL)을 오른다. 여명의 벽이다. 1970년 이 길로 처음 엘캐피탄 정상에 올랐던 워렌 하딩과 딘 콜드웰은 같은 뜻의 좀 긴 이름을 붙였다. ‘Wall of the Early Morning Ligh’라고. 아마 그들은 동쪽 멀리서 날아와 차디찬 바위 벽을 환하게 하고 이윽고 따뜻하게 만드는 그 빛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게다.
이미 45년 전에 누군가 올랐던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이 뭐 그리 별난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차이는 오름의 방식에 있다. 중력을 거부하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인 모든 클라이머의 로망이 그렇듯 이들은 이른바 프리스타일로 오른다.

엘캐피탄과 같은 거대한 벽(BIG WALL)에 오를 때는 부득이 인공적인 장비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전을 위한 확보장비 뿐 아니라 오르기 위해서도 인공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볼트를 정신 없이 설치하면서 올라가는 등반이야 이미 구시대의 것이지만 그래도 부득이한 경우 인공적인 장비를 설치하고 때로는 로프의 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올라도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클라이머들이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할 수 없다) 일이다.
그런데 콜드웰과 조거슨은 던 월을 오직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몸의 균형 만으로 오르는 도전에 나섰다. 로프(자일)은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확보용으로 만 사용된다.
둘은 현재 자신의 등반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다음 등반기록은 콜드웰과 조거슨이 페이스북에 남긴 기록을 요약한 것이다.
이들은 등반 첫 날인 28일 5피치를 올랐다. 조거슨은 난이도를 12b, 13a, 13c, 12b, 12d로 각각 기록했다. 콜드웰은 조심스럽게 올라야 했던 첫 다섯 피치였으나 모든 것이 잘 풀렸다고 평했다.
다음 날 이들은 10시간에 걸쳐서 4개의 피치를 더 했다. 이날은 모두 13c 이상이었고 7피치에서 14등급을 만났다. 14a였다. 이날 조거슨은 손가락 두 개가 찢어졌다. 그래도 ‘다음 첫 두 피치는 (그립이)그렇게 날카롭지 않다’며 위안을 삼았다. 콜드웰은 이날 등반에 대해 겨울 날씨가 엄청나다고 적었다.

30일은 원래 휴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평선에 이는 구름과 심상치 않은 바람이 둘을 움직이게 했다. 9피치를 끝내고 만나게 되는 첫 난구간 난이도 5.14a인 10피치를 통과해 놓고 쉬기로 했다. 콜드웰과 조거슨 모두 3번의 시도 끝에 10번째 피치를 끝내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12월 31일은 휴식일이었다. 365m 절벽에 매달린 포터렛지에서 그것도 겨울에 보내는 휴식이 마냥 휴식일 순 없었지만. 이날 거세게 분 겨울 바람은 콜드웰에게도 북극을 느끼게 했다.
1일은 조거슨에겐 등반의 첫 고비였다.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비박지 바로 위에 있는 얼음폭포에서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들을 피해가면서 몰라 트래버스라고 하는 난이도 5.14b 급의 11피치를 건너야 했다. 조거슨은 2010년 이 곳을 지나지 못하고 프리 클라이밍을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콜드웰이 앞장 섰고 조거슨 역시 다음 피치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닿을 수 있었다. 콜드웰에게도 이 트래버스 구간은 겨우 한 번 성공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래도 둘은 12피치까지 등반을 마쳤다.
13,14피치를 끝낸 2일 밤 조거슨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힘들고 이번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15피치에 도전했다. 하지만 조거슨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식을 알린 8일까지 이곳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면도날 같이 날카로운 바위 모서리를 잡느라 이미 오른 손 손가락은 만신창이가 됐다. 테이핑을 해도 살갖을 파고도는 바위 모서리를 막을 도리가 없었다. 6일 결국 손가락 상처가 아물 때까지 쉬기로 결정했다.
8일 밤 다시 벽에 매달렸지만 아쉽게도 15피치를 넘어서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손가락에 상처가 났다. 조거슨은 이날 ‘인내와 희망의 새로운 경지를 배우고 있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좀 더 쉰 다음 다시 시도할 것이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현재 콜드웰은 조거슨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다. 지난 4일 밤 15피치 구간 돌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콜드웰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난 밤 15피치를 올랐다. 조거슨도 몇 차례나 거의 성공할 뻔 했다. 조거슨이 상처로 인해 테이핑을 하지만 않았더라도 충분히 올랐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날씨는 점점 험하지만 (그 보다는)설레는 마음 때문에 잠들기가 힘들다’고 적었다.
15피치를 극복한 콜드웰은 6일 또 하나의 난관을 극복해 냈다. 아마 오르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냈다. 난이도 5.14의 다운 클라이밍 구간을 지났다. 이날은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날씨도 좋고 의지도 높다’고 하루를 평가했다.

콜드웰은 8일 새벽 ‘오늘 밤은 달콤 쌉쌀한 날이었다.마지막이 5.14등급인 레드포인트를 극복하고 피치를 마쳤다. 조거슨은 밤 늦게 까지 15피치와 씨름하다 손가락에 다시 상처가 생겨 후퇴하고 말았다. 내일은 새로운 날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콜드웰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클라이머다. 2004년 엘캐피탄의 디에드랄 월 루트를 처음 프리클라이밍으로 등반했다. 2005년에는 전 부인 베스 로든과 함께 더 노우즈 루트를 사상 3,4번째로 프리클라이밍으로 올라갔다. 이틀 뒤 콜드웰은 다시 같은 루트를 프리클라이밍으로 12시간 내에 오르는 능력을 보여줬다. 다시 며칠 뒤에는 더 노우즈 루트를 프리클라이밍으로 11시간 만에 오른 뒤 하산 했다가 프리라이더 루트를 12시간 만에 프리클라이밍으로 마쳤다. 엘캐피탄 역사상 처음으로 24시간 안에 두 개의 루트를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이들의 생생한 등반기와 사진은 페이스북 ‘www.facebook.com/kjorgeson’과 ‘https://www.facebook.com/pages/Tommy-Caldwell/180070212030430’에서 볼 수 있다. 던 월은 모두 32피치를 마쳐야 비로소 아래로 내려올 수 있다.
토미 콜드웰과 케빈 조거슨 페이스북 갈무리